고린도후서 10장: 자랑할 것 한 가지

해설:

이어서 사도는 고린도 교회의 몇몇 사람들이 자신에게 제기한 비판에 대해 변호합니다. 그들은 자신이 “얼굴을 마주 대하고 있을 때에는 여러분에게 유순하나, 떠나 있을 때에는 여러분에게 강경하다”(1절)고 말하기도 하고, “바울의 편지는 무게가 있고, 힘이 있지만, 직접 대할 때에는, 그는 약하고, 말주변도 변변치 못하다”(10절)고 헐뜯기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바울 사도가 지난 번 방문했을 때 몇몇 교인들이 공개적으로 모욕을 주었는데 아무런 응대를 하지 않고 물러선 것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사도는 그렇게 떠나고 나서 디도 편에 보낸 편지를 통해 매우 강력하게 그들의 잘못을 꾸짖고 회개를 요청했습니다. 바울이 그렇게 한 것은 자신을 비난하던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함이었는데, 그들은 그것이 바울의 약함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이 “육신을 입고 살고 있습니다마는, 육신을 따라 싸우는 것은 아닙니다”(3절)라고 말합니다. “육신을 따라 싸운다”는 말은 인간적인 감정으로 대응한다는 뜻입니다. 특히 갈등 상황에서 사도는 인간적인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따라 반응하기를 힘썼습니다. 그것은 “육체의 무기”(4절)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요새라도 무너뜨리는 강력한 무기”입니다. 그가 눈물로 쓴 편지는 바로 그 무기를 사용한 것입니다. 그랬기에 고린도 교인들이 그 편지를 읽고 마음 아파하며 회개한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해도 회개하지 않으면 다시 방문하여 그들을 처벌하려 했던 것입니다(6절).

바울은 그들의 잘못이 “겉모양만 보는 것”(7절)에 있음을 지적합니다. 중요한 것은 겉모양이 아니라 내용입니다. 사도는 자신이 그리스도께 속해 있으며 자신의 말이 그리스도께서 승인한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는 또한 자신이 그리스도께서 허락하시는 한도 내에서 일하고 있음을 믿고 있습니다(13절). 그가 누구에게 갔다면 그것도 그리스도께서 허락하신 것이요, 누구에게 가지 못했다면 그리스도께서 허락하지 않으신 것입니다(14절). 그렇기에 자신이 행한 일을 자랑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자신을 통해 유익한 일이 일어났다면 그것은 모두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혹시 자랑할 것이 있다면 그리스도를 자랑할 뿐입니다(17절). 하지만 그 자랑조차도 자신이 드러낼 일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드러내 주시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18절). 그래서 자랑하지 않고 있는데, 고린도 교인들 중 일부는 정말 자랑할 것이 없어서 그러는 것처럼 오인 했던 것입니다.

묵상:

믿는다는 것은 옛 자아를 십자가에서 못박고 새로운 자아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옛 자아의 자랑이었던 것들도 모두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과거에 자랑스러워했던 것을 자랑스러워하지 않습니다. 영원하고 절대적인 것을 보았기에 그것들이 무가치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런 것들을 여전히 자랑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우리에게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자랑입니다. 우리를 우리 자신보다 사랑하신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자랑입니다. 우리가 자랑할 것이 있다면 그분이 우리 가운데 활동하고 계시다는 사실 그리고 그분이 우리를 통해 이루신 일들 뿐입니다. 

이렇게 믿고 이렇게 생각한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을 억울하게 하는 말과 행동을 하지 않게 될 것이며, 다른 사람에게 억울한 일을 당해도 견딜 수 있을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누구에게나 진심으로 대하고 때로 억울한 오해와 모욕을 당해도 참고 견딜 수 있었던 힘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자기를 척도로 하여 자기를 재고, 자기를 기준으로 하여 자기를 견주어”(12절) 보지 않았습니다. 그의 기준은 언제나 그리스도 예수님이었습니다. 그것이 그로 하여금 인간적인 한계를 넘어 인내하게 하고 품게 하며 또한 용서하게 했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자기 자신에게는 아무 것도 자랑할 것이 없다고 느꼈습니다. 자랑할 것이 있다면 오직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해 주신 그리스도 예수를 자랑할 뿐입니다.  

3 thoughts on “고린도후서 10장: 자랑할 것 한 가지

  1. 육신을 입고 이생의 자만 속에서 생활해 왔던 지난 날들을 회상해 봅니다, 잠간 있다 갈 여정인데도 천년을 살거 같은 미련을 갖고 매달렸던 지난 날들을 되색여 보며 부끄러운 내 자신을 주님 앞에 내 놓습니다.
    이제는 먹던지 마시던지 오직 주님을 위해서 한다는 믿음에 도달하기 위해 오늘도 기도하며 간구합니다.
    지난 닐들을 십자가에 매달고 이제는 새로운 피조물로 주님이 나의 주인 되기를 기도하며 주님의 온유함과 자비하심이 오늘 하루의 바탕이 되기를 간구합니다.
    주님이 함께하는 하루로 은총 내려주십시요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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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겉만 보고 비교하고 또 자랑하고 교만하고 어리석었습니다.
    주님께서 보시기에 겸손하게 되고 십자가만 자랑하는 지혜를 원합니다.
    이웃과 더불어 저희들의 삶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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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내가 원하는 것을 앞세우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나 하기 좋은대로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한다는 뜻입니다. 자아가 강하고 자기 주장이 뚜렷하며 매사에 똑부러진 사람이면 그만큼 더 어렵고 괴로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시고 속속들이 아시기에 분에 넘치는 은혜와 사랑으로 우리를 보아 내십니다. 하나님의 표준대로라면 서있을 사람이 몇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다 자기 생긴대로, 모자라고 뒤떨어지는 모습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길을 걷겠다고 나서는 우리는 자아를 빨리 내려놓을수록, 자기 고집을 빨리 꺾을수록 그리스도의 법을 배우기가 쉬워집니다. 크리스찬으로 사는 것은 이 세상이 가르치는 것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가르치는 것과 반대로 가야 오히려 제대로 가는 것이 될 만큼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물으면 ” (나) 하고 싶은거의 반대”라고 답하시던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괴롭히는 하나님을 떠올리게 만드는 답이지만 그 안에는 우리의 본성과 기대는 다 나 편하고 좋은 쪽으로 가게 되어 있음을 지적하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교회 헌금은 물론 우리의 경제생활이 모두 우리의 영적인 훈련, 인격의 성숙과 곧바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나를 넘어서지 않으면 감사헌금도 구제헌금도 드리기 어렵습니다. 내 입에 들어갈 밥이 줄어든다는 계산부터 하고 있으면 남과 나눌 때 풍성해지는 하나님의 계산법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바울이 “세상의 표준대로 (2절)” 산다고 공격한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대로만 보았을 뿐 그리스도 안에서 참자유를 얻어 어떤 형편에서든, 어떤 자리에서든 그리스도의 뜻을 먼저 생각한 바울을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오늘 나는 나를 뒤로 보낼 수 있겠는지…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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