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12장: 영적 강자의 조건

해설:

앞에서 그리스도를 위해 자신이 당한 고난들을 열거하며 자신의 사도성을 변호했던 바울은 이번에는 자신이 겪은 영적 체험을 설명합니다. 이 대목에서 그는 일인칭이 아니라 삼인칭을 사용합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 하나를 알고 있습니다”(2절)라는 말은 곧 자기 자신을 가리킵니다. 영적 체험을 말하면서 “나는…”이라고 하면 자랑하는 것이 되기에 “그는…”이라고 서술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영적 황홀경에 있을 때의 자신과 그렇지 않을 때의 자신은 동일한 사람이지만 똑같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연약함을 지닌 한 인간으로서의 자신과 영적 황홀경에 사로잡혀 있던 자신을 구분하여 말하는 것입니다. 

“셋째 하늘에까지 이끌려 올라갔습니다”(2절)라는 말은 당시 유대인들의 우주관에 따른 표현입니다. 그들은 우주가 일곱 층으로 되어 있다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셋째 하늘에까지 이끌려 올라갔다는 말은 그 정도로 깊은 영적 체험을 했다는 뜻입니다. “그 때에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십니다”(2-3절)라는 말은 영적 체험을 할 때의 자신의 상태가 어떠했는지 자세히 묘사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 상태에서 “낙원”(4절)을 보았는데, 거기서 보고 들은 것은 말로 표현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4절). 

바울은 다시 연약함을 지닌 자신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 옵니다. 한 인간으로서의 자신에 대해서는 앞에서 말한대로 약점밖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합니다(5절). 그가 자신이 겪은 수 많은 영적 체험에 대해 침묵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과대평가하지 않게 하려는 데 있습니다(6-7절).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자신의 영적 체험 때문에 교만해지지 않도록 “몸에 가시”(7절)를 주셨습니다. “몸에 가시”는 그가 겪고 있던 지병을 말합니다. 그는 그 지병을 없애 달라고 세 번이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만(8절), 주님께서는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능력은 약한 데서 완전하게 된다”(9절)면서 응답해 주지 않으셨습니다. 

바울 사도는 성령의 능력으로 수 많은 사람들의 질병을 치유했습니다만(12절), 정작 자신은 지병으로 고통을 받았던 것입니다. 바울은 그것을 “사탄의 하수인”(7절)이라고 부릅니다. 그것은 자신을 겸손하게 만드는 도구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연약함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자랑합니다. 인간적으로 약할 때가 진실로 강해질 때이기 때문입니다(10절).

바울 사도는 자신에 대해 변호함으로써 이미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11절). 고린도 교인들 중 일부가 그의 사도성을 의심하고 그가 전한 복음을 떠나 “다른 복음”을 믿게 되었기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들이 “다른 복음”과 “다른 그리스도”를 버리고 “온전한 복음”과 “진짜 그리스도”를 믿게 하려면 바울 사도의 신뢰성이 회복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려면 어쩔 수 없이 자신을 변호해야 했습니다(12-13절0. 그것이 바울 사도에게는 고통스러운 일이었습니다.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인데, 하기에는 너무도 어리석은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방문할 계획에 대해 말합니다(14절). 그는 이제 세 번째로 고린도를 방문할 계획인데, 이번에도 아무에게도 재정적인 부담을 주지 않을 계획입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그것은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내린 결정입니다(14-15절). 바울만이 아니라 디도와 다른 형제도 그렇게 했습니다(16-18절). 지금 바울 사도가 이 편지를 쓰는 것은 다시 만났을 때 서로의 기대에 어긋나고 하나님께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19-21절). 그들 가운데 “싸움과 시기와 분노와 경쟁심과 비방과 수군거림과 교만과 무질서”(20절)가 사라지고 또한 그들이 “부정함과 음란함과 방탕함”(21절)을 회개하여 다시 만났을 때 서로로 인해 감사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묵상:

바울 사도는 수 많은 영적 체험을 했고 또한 놀라운 이적을 행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자랑하지도 않았고 그것으로 인해 자신이 무엇이나 된 것처럼 행세하지 않았습니다. 한 인간으로서 그는 깨어지기 쉬운 질그릇이었음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가 겪고 있던 지병이 그 사실을 늘 기억하게 해 주었습니다. 만일 그런 것이 없었다면 그도 역시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타락 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잊지 않았습니다. 그는 고난 중에 하나님의 임재를 더 강력하게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고난도, 약함도 은혜임을 알았습니다. 아니, 고난과 약함 중에서 더 큰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연약함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약함의 은혜를 잊어 버렸습니다. 모두가 강자를 꿈꾸는 세상에서 교회 마져도 승리와 성공과 능력과 영광을 선전해 왔습니다. 그런 것에서만 하나님의 은혜를 찾습니다. 고난과 연약함에 담긴 신비로운 은혜에 대해서는 망각하고 있습니다. 목회자들은 영적 강자가 되기를 꿈꾸다가 영적 사기꾼이 되어 버리고, 믿는 이들은 아직도 그런 사람들을 찾아 다닙니다. 영적 체험은 우리에게 필요할 때 성령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와 하나 되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오직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여, 그분의 죽으심을 본 받는 것”(빌 3:10)을 추구했습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에게 회복되어야 할 영성입니다. 

2 thoughts on “고린도후서 12장: 영적 강자의 조건

  1. 어제 묵상은 종교의 자유가 있는 사회에서 안전하고 편하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음이 감사하다는 데서 출발했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누리는 안전함과 안정감이 안일함으로 변질되었나 (다 편할 안자로 시작되는 단어군요) 생각해봅니다. 안전하면 안정이 되고 안정을 누리다 보면 안일하게 되는 것이 사람의 심리입니다. 안일하다는 것은 편안한 것만을 누리려는 태도라고 정의할 수 있으며 쉽고 편안하게 생각하여 관심을 적게 두는 태도라는 풀이도 가능합니다. 기독교가 핍박을 받던 입장에서 이제는 남을 핍박하는 자리에 있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어렸을 때만 해도 “믿는 사람 (크리스찬)은 달라”라는 소리는 선하고 어진 사람, 양보하는 사람이라는 뜻이었는데 지금은 “믿는 사람이 더 하다”는 소리로 바뀌었습니다. 더 악착같고, 더 깍쟁이고, 더 따지고…”법 없이도”에서 “법대로”로 바뀌었는데 그나마 다같이 지키는 법이 아니라 “내가 곧 법”으로 바뀐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합니다. 바울은 여러 면에서 우리가 따라 가기에는 너무나 멀리, 높이 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그의 신앙과 신학을 공부하는 이유는 그의 렌즈를 빌려서 보는 일이 유익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안일하다는 것은 관심이 그만큼 줄었다는 뜻도 됩니다. 바울은 안일하지 않았습니다. 영적인 체험을 하고도 그것을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약할 때 어려울 때 더욱 기뻐했습니다. 자기는 뒤로 숨고 그리스도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법은 우리의 법과 같지 않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의 렌즈로 세상을 보면 고난이나 연약함은 영광이며 능력이고, 학식과 명예는 헛된 쓰레기라는 것이 분명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분명히 보는 눈이 열리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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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사도 바울을 통해 기도의 응답이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 응답하신 다는 것을 배웁니다, 내가 약 할 때 내가 가장 낮은 곳에 있을 때 주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을 받아들여 궁국적으로 추구하는 구원의 역사도 내가 죄인임을 스스로 인정하고 주님을 구원자로 받아 드리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을 잊지 않게 늘 깨어 있기를 간구합니다.
    종종 내가 당면하는 어떤 불편이 있어도 그대로 받아드리고 주님의 뜻을 이해하는 믿음으로 오늘 하루도 이끌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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