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09편: 기도는 과정이다

해설:

이 시편은 모든 경건한 이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저주시편’ 중 하나입니다. 저자는 다윗으로 되어 있습니다. 

먼저 그는 하나님께 “잠잠히 계시지 마십시오”(1절)라고 기도합니다. 자신의 억울하고 분한 사정을 살피시고 바로잡아 달라는 호소입니다. 그는 지금 “악한 자와 속이는 자”(2절)로부터 근거도 없는 비난과 고소를 당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들을 사랑하여 그들을 위하여 기도를 올리건만”(4절) 그들은 “선을 오히려 악으로 갚고, 사랑을 미움으로 갚습니다”(5절). 모르는 사람에게서 당하는 아픔보다 아는 사람에게서 당하는 아픔이 훨씬 더 큰 법입니다.

이어서 다윗은 그 사람에 대한 징계를 하나님께 간구합니다(6-21절). 여기서의 “그”(단수)는 다윗을 고통스럽게 하고 있는 사람들 전체를 가리킵니다. 다윗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악담과 저주를 하나님 앞에 쏟아 놓습니다. 얼마나 심하게, 얼마나 오래, 얼마나 억울하게 당했기에 이렇게까지 악담을 퍼부을 수 있나 싶습니다. 속으로 삭이고 삭여 왔던 분노가 한꺼번에 폭발한 것 같습니다. 그는 절제를 상실하고 마음 깊은 곳에 쌓여있는 분노의 찌꺼기까지 다 쏟아 놓습니다. 

그런 다음 다윗은 자기 자신이 그들로 인해 얼마나 불쌍한 처지에 있게 되었는지를 설명합니다(22-25절). 원수들의 모함에 사람들은 자신을 벌레 보듯 하고, 그로 인해 그의 마음과 몸은 모두 쇠약해졌습니다. 그러면서 다윗은 하나님께 도움을 호소합니다(26-29절). 지금 상황에서 그에게 유일한 희망은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분에게는 “한결같은 사랑”(26절)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자신이 이렇게 망하고 만다면, 그것은 주님의 명성에 어울리지 않는 일입니다. 

이런 기도 끝에 다윗은 영적인 힘을 회복합니다. 그는 다시금 하나님을 찬양할 힘을 얻습니다. 하나님께서 한결같은 사랑으로 자신을 구원해 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30-31절).

묵상: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있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바울 사도의 말씀을 기억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이런 기도를 읽으며 당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거룩한 성경에 이토록 지독한 악담의 기도가 어울리지 않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알고 보면 저주시편들이 시편 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역설적 선물’입니다. 하나님 앞에 설 때 자신의 감정에 정직해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분입니다. 우리 내면에 숨겨져 있는 모든 생각과 감정을 다 아시는 분입니다. 그렇기에 그분 앞에서 감정을 숨기는 것은 헛된 일입니다. 전신 MRI 기계 앞에 서는 것처럼 우리 자신의 내면을 다 열고 그분 앞에 서야 합니다. 지독한 분노가 마음 속에서 꿈틀거릴 때 하나님 앞에서 그것을 토해 내야 합니다. 때로 우리는 감정에 압도당합니다. 감사와 감격에 압도 당하여 춤을 추면서 찬양하기도 하지만, 분노와 앙심에 압도 당하여 입에 담기 힘든 악담을 쏟아 놓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허락하십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주시편은 ‘과정 중에 있는 기도’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저주가 기도의 결론이 아닙니다. 오늘 시편에서 보듯, 자신의 감정에 정직한 기도는 결국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도로 끝나게 되어 있습니다. 기도 중에 마음에 쌓인 분노가 해소되었기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되찾고 찬양하고 싶은 열정이 회복된 것입니다. 자신의 감정에 정직하게 기도할 때에만 일어날 수 있는 변화입니다. 마음에는 분노를 가득 품고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거룩한 말로 기도 시간을 채운다면, 그 사람의 마음에는 아무런 변화가 일어날 수 없습니다. 기도는 무엇보다 먼저 기도자 자신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주시편은 우리의 기도에 대해 매우 중요한 교훈을 주는 기도입니다. 

2 thoughts on “시편 109편: 기도는 과정이다

  1. 원수를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싶은 마음을 원합니다.
    피곤하고 힘든 상황에 있을지라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필요합니다.
    조국이나 이땅의 지도자들이 주님을 경외하고 정직하고 가난하고
    어려운 백성을 먼저 배려하는 정책을 실현 하는 정치가들이
    되도록 기도합니다. 모든것을 주관하시고 함께하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이웃과함께 들이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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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깜짝 놀랐습니다 6절부터 19절까지 나오는 저주에. 해설과 묵상 말씀이 있어 참 다행입니다. 이렇게까지 적을 저주해도 되는가, 예수님은 용서를 가르치시는데…며칠 전까지 묵상한 바울의 서신에서 바울은 오히려 모든 억울함과 고난을 영광처럼 여기며 사랑과 용서를 가르치고 보여주는데…하지만 시편 본문을 끝까지 읽고나니 두 가지가 보입니다. 언어의 힘과 믿음의 능력입니다. 분노와 절망의 감정에 사로잡힐 때 언어는 출구가 되기도 합니다. 어느 언어권이든 “나쁜 말” “욕”은 저주를 담고 있습니다.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이 상대방에게 일어나라고 기원하는 것이 욕입니다. 죽이고 싶은데 죽일 수는 없으니까 (죽이면 안되니까) 말로 죽이는 것이 저주입니다. 죽이고 싶도록 미운 대상이 없이 살았다면 그것 자체가 복받은 인생입니다. 다윗은 격한 미움의 감정을 저주의 탄원으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저주의 언어가 상당합니다. 언어는 탄알이고, 화폐이고 양식이며 에너지입니다. 굳이 교육학 이론을 떠올리지 않아도 어려서부터 언어능력을 키우는 일이 중요한 것은 vocabulary 를 많이 알수록 그의 내면도 깊어지고 넓어지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표현할수록 감정도 구체적으로 실려 나갑니다. 고급 단어를 구사해 자기를 돋보이려는 허영심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단어마다 갖고 있는 뉘앙스와 뜻을 많이 알면 알수록 표현이 더 정확해지는 것은 분명합니다. “분이 풀리도록” “분이 풀릴 때까지” 욕을 해대는 것은 미움의 에너지를 언어에 실어 내보내는 것입니다. 내 속에 가득찬 화를 “뚜껑을 열고” 내보내는 것입니다. 다윗은 지금 therapy 를 받고 있습니다. 감사한 것은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묵상과 기도의 시간을 통해 필요하고 적절한 therapy를 수시로 받는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이런 기도를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억울하고 괴로운 마음으로 성경을 펼쳤을 때 “바로 이거야! 아멘! 아멘!” 소리가 안 나올 지 모릅니다. 눈물 콧물 다 닦은 말간 얼굴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만 들어있다면 잠을 이룰 수 없을 때 성경을 열어보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다윗의 시를 통해 믿음의 능력을 봅니다. 나의 분노를 이기는 능력, 내 감정을 다스리고 하나님의 크신 뜻에 맡기는 능력을 배웁니다. 우리의 모든 언어를 아시는 주님, 우리의 모든 언어를 받아주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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