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4장 1-42절: 참된 예배와 참된 양식

해설:

예수님은 유대 광야에서의 세례 사역을 접고 갈릴리로 돌아 가십니다. 유대에서 갈릴리로 가기 위해서는 사마리아 지방을 거쳐 가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이방인으로 취급했기에 접촉하기를 꺼렸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를 거쳐가기 보다는 요단강 주변의 광야길을 사용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차별의식을 반대하셨기에 사마리아를 통과하십니다. 

사마리아의 수가라는 마을에 이르렀을 때의 일입니다. 그곳에 야곱이 판 우물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그 우물에서 쉬고 계시는 동안 제자들은 먹을 것을 사러 동네로 들어갔습니다. 때는 “오정쯤”(6절) 되었습니다. 팔레스틴 지방에서 한낮은 모든 것이 정지된 시간입니다. 너무나 뜨겁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 여인이 물을 길러 옵니다. 아무도 없는 시간에 물을 길러 온 것입니다. 

그 여인이 물을 길러 하자 예수님이 마실 물을 좀 달라고 하십니다. 그 여인은 유대 남성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을 거는 것에 깜짝 놀랍니다. 유대 남성의 자존심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야곱의 우물에서는 구할 수 없는 진정한 생수가 당신에게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정말 물이 필요한 사람은 예수님이 아니라 그 여인이라는 뜻입니다. 그 여인은 야곱의 우물물로는 채울 수 없는 영적 갈증을 겪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주는 물을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14절). 그 여인이 영원히 목 마르지 않는 물을 달라고 하자 예수님은 가서 남편을 데려 오라고 하십니다. 

그 여인의 숨겨진 문제를 드러내신 것입니다. 그 여인은 다섯 번이나 남편에게 버림받고 지금 여섯 번째 남자에게 의지하고 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남자들에게 거듭 버림 받았지만 누구에겐가 의지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여인이었습니다. 자신의 숨겨진 과거를 예수님이 알고 있음을 보고 그 여인은 예수님을 예언자라고 생각합니다(19절). 그리고는 영적인 질문을 꺼냅니다. 당시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리심 산에 있는 성전에서 예배 드려야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주장했고, 유대 사람들은 시온 산에 있는 성전에서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누구의 말이 맞느냐고 묻습니다(20절). 그러자 예수님은 “하나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려는 사람은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24절)고 답하십니다. 하나님은 성령과 함께 하는 예배를 원하시며, 그런 예배라면 언제, 어디서 드리든 상관 없다는 뜻입니다. 

먹을 것을 사러 갔던 제자들이 돌아와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를 나누시는 예수님을 보고 놀랍니다. 그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가서 사람들에게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그 여인은 동네 사람들로부터 소외 당했던 사람인데, 예수님이 그리스도일지 모른다는 사실로 인해 너무 기쁜 나머지 자신을 소외시킨 동네 사람들에게 찾아가 말을 겁니다.

그러는 동안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음식을 내어 놓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나에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다”(32절)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은 그게 무엇일까 궁금해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고, 그분의 일을 이루는 것이다”(34절)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여기서 영적인 양식을 말씀하십니다. 육신적인 양식이 육신에 활력을 제공하듯,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뜻을 이루는 것은 진실로 살맛나게 합니다. 그 일이란 잃어 버린 영혼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추수에 비유하십니다(35-38절). 

수가 동네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 여인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찾아 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청을 받아 그 동네에서 이틀 동안 머무십니다.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사이에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 그 여인에게 “우리가 믿은 것은, 이제 당신의 말 때문만은 아니오. 우리가 그 말씀을 직접 들어보고, 이분이 참으로 세상의 구주이심을 알았기 때문이오”(42절)라고 말합니다. 

묵상:

우리의 육신은 매일 적당한 양의 음식과 음료를 필요로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육신의 생명을 유지할 수가 없고 삶을 정상적으로 영위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물로는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고 음식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허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당신을 위한 자리를 만들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는 하나님과의 사귐을 통해 채워질 수 있습니다. 진정한 예배는 영이신 하나님과 사귐을 나누는 것입니다. 성령 안에서 영적으로 예배 할 때 우리 내면의 빈 자리는 채워질 수 있고, 그럴 때 영적 갈증은 해결될 수 있습니다. 또한 그러한 예배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을 행하려는 열정을 불어 넣어 줍니다. 그것은 영적인 음식처럼 우리의 삶을 활력으로 채워 줍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예배에 대해 그리고 양식에 대해 전혀 새로운 시각을 배웁니다. 우리는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 함께 모여 드리는 예배만 알고 있습니다. 그것도 필요하지만, 예수님은 성령과 동행하며 살아가는 삶이 더 중요한 예배라고 하십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24절)는 말은 예배 시간에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진리의 영과 함께 예배의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 사도의 표현대로 하자면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는 것입니다(고전 10:31). 우리는 또한 식탁에 차려 놓고 먹고 마시는 것을 우리의 양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필요합니다만, 더 중요하고 더 근원적인 양식은 하나님의 영과 그분의 말씀이라고 하십니다. 그것을 통해 우리의 영혼이 자라기 때문입니다.   

  

2 thoughts on “요한복음 4장 1-42절: 참된 예배와 참된 양식

  1. 비천하고 소외된 인간을 찾아오시는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식사할때 주님의 말씀을, 물을 마실때 생명수를 기억하게 도와 주십시오.
    언어와 행동과 삶이 주님께 드리는 예배가 되기를 원 합니다.
    이웃과 함께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세상에 소개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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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한 사마리아 여인을 통해 주시는 말씀으로 내 자신을 비추어 봅니다, 영적으로 갈급한 상태가 얼마이고 또 얼마나 진솔하게 내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과 영적 예배에 이르고 있는지를 반성해 봅니다.
    내 일거수 일투족이 하나님의 영과 진리 속에서 이루어 지고있는지? 또 수가 여인 같이 솔직하게 마음을 열고 주님을 받아드리고 있는지도 자책해 봅니다.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며 주님의 추수에 동참하는 하루로 은총 내려 주십시요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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