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6장 1-21절: 진짜 출애굽 사건

해설:

유월절 가까웠을 때 예수님은 갈릴리 호수 건너편에 있는 산에 오르십니다. 많은 무리가 그분에게 모여 들었고 예수님은 빌립에게 “우리가 어디에서 빵을 사다가,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5절)고 물으십니다. 그분은 어떤 일인가를 꾸미고 계셨는데, 그 일을 숨기시고 빌립을 떠 보신 것입니다(6절). 그러자 빌립은 그 무리를 다 먹이려면 빵 이백 데나리온어치를 가지고도 부족하다고 대답합니다. 한 데나리온은 성인 한 사람의 하루 품삯이었습니다. 그러니 이백 데나리온은 꽤 많은 돈이었습니다. 그들에게 그렇게 큰 돈이 있을 리가 없었습니다.

곁에서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안드레가 한 아이가 가지고 있던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예수께 보여 드립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람들을 안게 하라고 명하신 후 빵을 들어 감사 기도를 드리신 후에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시고 물고기 두 마리도 그렇게 하십니다. 그곳에는 남자만도 오천 명쯤 모여 있었습니다(10절). 그 적은 음식을 그 많은 사람들이 배불리 나누어 먹고도 남은 부스러기가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습니다. 빌립에게 물으실 때 예수님은 이 일을 마음 속에 계획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이적을 경험한 사람들은 광야에서 조상들이 먹었던 만나를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예수님이 “참으로 세상에 오시기로 된 그 예언자”(14절) 즉 메시아라는 믿음이 들었습니다. 그 믿음은 삽시간에 군중 사이에 퍼져 나갔고 예수님을 왕으로 추대 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납니다. 그 분위기를 감지하신 예수님은 산 속으로 몸을 피하십니다(15절). 지금은 아직 당신의 정체를 드러낼 때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메시아로서 예수님이 하실 일과 무리가 메시아에게 바라는 일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날이 저물자 제자들은 산에서 내려가 배를 타고 호수 건너편 가버나움으로 향합니다(16절). 예수님은 아직 산 속에 계십니다. 호수 한 가운데 이르자 갑자기 돌풍이 불어칩니다. 갈릴리 호수는 주변 지형 조건으로 인해 갑작스럽게 돌풍이 불어닥치곤 했습니다. 그들이 돌풍과 싸우다 지칠 즈음에 예수님이 바다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다가 오십니다. 제자들은 유령인 줄 알고 두려워 떨었고, 예수님은 “나다. 두려워하지 말아라”(20절)고 말씀하십니다. 

당시 성경을 알고 있던 유대인이라면 “나다”라는 말의 의미를 놓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것은 떨기나무 사이에서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이름을 알려 달라는 모세의 청에 대해 주신 답이었습니다. 개역개정에는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출 3:14)라고 번역되어 있는데, 새번역의 “나는 곧 나다”라는 번역이 더 좋습니다. 영어로는 I am who I am 혹은 I am who I will be로 번역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정의하고 규정할 대상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모세가 불 타는 떨기나무에서 하나님을 뵌 것처럼 제자들은 풍랑 가운데서 하나님을 뵌 것입니다.

묵상:

두 이야기는 예수님을 모세와 연관지어 생각하게 만듭니다. 예수께서 빵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로 수 많은 무리를 먹이신 기적은 유월절 가까울 때 일어났습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의 출애굽 사건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이 시기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의 노예살이로부터 해방시켜 주신 것을 기억하고 감사하고 축하합니다. 예수님이 산에서 행하신 기적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유랑 40년 동안 매일 누렸던 만나의 기적을 생각하게 합니다. 이로써 예수님은 메시아로서 당신께서 행하실 ‘진짜 출애굽’ 사건을 기대하게 하십니다. 그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만이 아니라 모든 인류를 위한 것입니다. 이집트의 노예살이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죄와 심판의 노예됨으로부터의 해방입니다. 

예수님이 그런 일을 하실 수 있는 이유는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풍랑 가운데 사투를 벌이고 있던 제자들에게 다가 오셔서 하나님이신 당신의 정체를 드러내 보여 주셨습니다. 그분이 모든 인류를 죄와 심판으로부터 구원하실 메시아가 되시는 이유는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정체는 아직 제자들에게만 알려져야 합니다. 무리들에게 알려지면 메시아로서 해야 할 일을 완수하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그분은 “때”(2:4; 7:6)를 기다리십니다. 

당신의 때가 이르렀을 때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십자가에 오르시어 모든 인류를 죄와 심판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거룩한 사명을 완수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분을 믿음으로 ‘진짜 출애굽’을 경험하며 새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4 thoughts on “요한복음 6장 1-21절: 진짜 출애굽 사건

  1. 5병 2어를 통하여 때론 기적으로 나타나시는 예수님, 자연을 꾸짓으시며 자신을 드러내셨던 그 주님이 오늘 날 내 삶에서도 필요시엔 같은 기적으로 나타나시기도하며 또 자연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내 자신을 비추어 봅니다, 자연 재해를 볼 때마다 왜? 그런 큰 피해들이 일어나는지 궁금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가이 해아리려는 옹졸함을 발견하곤 합니다.
    하루 일상을 통한 아주 적은 일에서부터 주님을 의지하며 주님의 권능에 순종하는 믿음으로 오늘 하루도 주님만을 의지하는 하루로 이끌어 주실 것을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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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매일 아침마다 영의 만나 소중한 말씀을 주시는 주님께 감사하며 맛있게
    먹고 영육간에 강건해 지기를 원합니다. 세상 험한풍파를 거슬려 살면서도
    때 마쳐 찾아오시는 주님을 생각하며 기쁨과 소망을 갖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웃과함께 십자가의 구원을 세상에 전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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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6장까지 오면서 유월절이 다가와, 유월절 기간에, 유대인 명절이 되어, 유월절 무렵에….같은 해에 일어난 일인지 그 이듬해 같은 기간 일인지 모르지만 요한의 기록은 이 일들이 유월절 명절에 일어났음을 알리고자합니다. 유월절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난 일을 기념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재차 확인하는 절기입니다. 양의 피를 문에 발라 죽음이 그들을 넘어 지나갔음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이집트인들의 곡소리가 온 세상에 가득하던 밤에 유대인들은 감사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다시 태어남 – 유대인의 지성인 니고데모가 깨닫지 못했던 다시 태어남을 공동체적으로 같이 경험했던 일을 대대로 기리는 절기인데 예수님은 이 때에 많은 기적을 보이시면서 실로 새로운 구원이 임했음을, 유대인에게만 내렸던 하나님의 은혜 favor 가 모든 이에게 적용됨을 선포하십니다. 유대인 사마리아인 병자 부자…everyone is invited. everyone. 마태 마가 누가 복음에도 이 일은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 복음서에 예수님은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십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해결해보라는 대신에 빌립에게 질문하십니다. 이 기적의 해석이 여러가지지만 먹을 것이 없는 광야에서도 만나를 내려 주시고, 바위에서 물이 나오게 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는 질문임을 우리는 (후대의 독자들은)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의 지혜 (각자 가지고 온 양식?)를 모아 해결을 했든, 예수님 주머니가 화수분 (재물이 계속 나오는) 이 되어 계속 빵이 나왔든, “유월절”에 일어난 이 기적은 하나님의 자녀로 자신을 보게 하는 일이라는 것을 놓칠 수가 없습니다. 곧이어 나오는 일도 물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만 제외). 예수님으로 우리에게 오신 하나님 (나는 곧 나다) 이심을 곧장 연결해줍니다. 복음서 기자들이 기록해놓지 않았으면 만인을 위한 복음이 되었을까 생각해봅니다.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내게까지 전달한 복음을 듣고 하나님의 자녀로 스스로를 보게 되었다는 일보다 더 큰 기적이 없습니다. 미술관에서 수 백년 전, 거의 천년 전에 그려진 성화들을 보고 있노라면 성화 자체도 놀랍도록 아름답지만, 그 성화가 내 눈 앞에 걸려있음이 더 큰 기적처럼 느껴지는 것을 경험합니다. 세월 속에 살아남은 작품의 생명력 – 화재와 약탈 속에서, 작품 재료의 손상과 마모를 견딘 -을 느끼며 하나님께 감사를 올립니다. 나의 유월절. 본 어게인 버스데이는 오늘입니다. Today and Every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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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5병2어의 기적을 보며 여러 생각을 하게 됩니다. 먼저 생각난건 굶주릴까 걱정하지 않고 너무 먹어서 살찔까 걱정하는 자신의 모습에 참 아이러니 합니다. 학생 때를 돌이켜보면 돈이 없어서 지금만큼 먹지도 못하고 여행도 못 다녔었는데. 지금은 더 좋은 형편이지만 더 못 누릴까 걱정하는 자신의 모습이 부끄럽습니다.

    그리고 생각나게 하는 건 많은 무리들을 먹이신 예수님입니다. 우리가 성찬을 통해 예수님을 기억하듯이 옆에 성도님들과 밖으로 이웃들과 같이 먹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나눔을 통해 일하신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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