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6장 22-59절: 하늘에서 내려 온 빵

해설:

이튿날 오병이어의 기적을 경험했던 무리들은 밤 사이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사라진 것을 알고 수소문하여 가버나움으로 몰려 갑니다(22-24절). 그들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밤 사이에 가버나움으로 옮겨 오신 것에 대해 놀라면서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습니다(25절). 그러자 예수님은 “너희가 나를 찾은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먹고 배가 불렀기 때문”(26절)이라고 일침을 가하십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아 보았어야 하는데, 그것에는 관심이 없고 더 신기한 기적을 보고 싶어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일하지 말고, 영생에 이르도록 남아 있을 양식을 얻으려고 일하여라”(27절)고 하십니다.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일하는 것”은 육신적이고 물질적인 것에만 붙들려 사는 것을 뜻합니다. “영생에 이르도록 남아 있을 양식”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알고 하나님 나라에 눈 뜨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자 그들은 “우리가 무엇을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됩니까?”(28절)라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일이다”(29절)라고 답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독생자를 보내셨으니 그분을 인정하고 믿는 것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믿도록 표징을 보여 달라고 요구합니다(30-31절). 모세의 만나와 같은 표징을 보여 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만나는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답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진정으로 주고 싶어하시는 것은 하루 먹고 끝나는 만나가 아니라 영생하게 하는 생명의 빵이라고 말씀하십니다(33절). 이 말씀을 듣고 그들이, “이 빵을 언제나 우리에게 주십시오”(34절)라고 대답합니다. 물질의 빵으로 오해한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내게로 오는 사람은 결코 주리지 않을 것이요, 나를 믿는 사람은 다시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35절)라고 답하십니다. 지금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육신의 허기와 갈증을 채울 물질의 빵이 아닙니다. 영적 허기와 갈증을 채워 줄 영적인 빵에 대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을 믿는 것은 곧 생명의 빵과 생명의 음료를 얻는 것입니다. 지금 이 땅에서 참된 생명을 얻고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39-40절).

이 말을 듣고 있던 사람들 중 예수님께 반감을 가지고 있던 유대인들이 분개합니다. 그가 요셉의 아들인 것을 뻔히 아는데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 온 빵이라고 말하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들이 수군거리는 것을 보신 예수님은 그들의 불신앙을 책망하십니다. 그리고는 더욱 자극적으로 말씀하십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나의 살이다. 그것은 세상에 생명을 준다”(51절). 

유대인들은 이 말씀에 경악을 금치 못합니다. 자신의 살을 먹고 자신의 피를 마시라니! 그러자 예수님은 “내 살은 참 양식이요, 내 피는 참 음료이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있고, 나도 그 사람 안에 있다”(55-56절)고 말씀하시면서 유대인들을 압박합니다. 예수님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면 이 말씀은 참을 수 없는 망발입니다. 예수님이 제 정신을 잃지 않고서야 당신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라고 하실 리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에는 다른 의미가 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유대인들은 끝내 그 말씀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등을 돌립니다. 

묵상: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먹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육신에 음식과 음료가 필요하듯 우리의 영혼에도 음식과 음료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과 음료가 우리의 육신을 형성하듯, 우리가 먹고 마시는 영적 음식이 곧 우리 자신이 됩니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영적 활동은 예수를 먹는 과정입니다. 예배도 그렇고, 말씀 묵상도 그렇고, 찬양도 그렇고, 기도도 그렇습니다. 그 모든 것을 통해 우리는 예수를 먹습니다. 그러면 예수께서 내 안에서 움직이십니다. 내 생각과 지향과 뜻과 감정이 그분의 것이 됩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은 인생의 의미에 대한 갈증에 시달리지 않습니다. 인생의 낙을 찾아 두리번 거리지 않습니다. 하루 하루 의미와 기쁨이 내면에 들어차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것이 “영생을 맛보며 하루를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럴 때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당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성찬을 받을 때 우리는 우리가 무엇으로 살고 있는지를 확인합니다. 우리가 매일 예수님을 먹고 마시지 않으면 온전히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합니다. 우리 내면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실존적인 허기와 갈증을 해결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립니다. 성찬 빵을 받아들고 성찬 포도즙이 혀를 적실 때, 우리에게 오셔서 참된 만족을 안겨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과 영이 우리의 살과 피가 되어 그분의 모습으로 변화시켜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삶이 물질에만 사로잡혀 살아가며 실존적인 허기와 갈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목마름을 일깨워주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4 thoughts on “요한복음 6장 22-59절: 하늘에서 내려 온 빵

  1. 오늘은 예수님이 누구인가를 스스로 설명하면서 주시는 생명의 말씀으로 살아 가는 것이 영생을 향한 길임을 강조하시는 아침입니다, 매 성찬식 때마다 떼는 빵과 포도즙이 정말 예수님의 살과 피인가 하고 실감이 안 오는 경우가 많았기에 아직도 주님에 대한 믿음이 부족함에 부끄러움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주님의 말씀으로 오늘 하루를 소화하고 찬양과 기도로 주님과 소통하며 하늘나라의 맞을 즐기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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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식사할때 마다 성찬을 기억하기를 원 합니다. 무슨 일을 하던지 주님을 먼저
    생각 하기를 원 합니다. 영의 양식과 물을 먹고 마셔서 항상 영적으로 강건
    하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이 내안에 내가 주님안에 있음을 깨닫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웃과함께 영생을 맛보며 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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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먹는 것이 믿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잘 이해되지 않는데 문득 망자를 기리는 제사상이 떠올랐습니다. 제사 올리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는데 작년 여름에 시어머님 기일을 맞아 한국에 가니 동서가 납골공원에 제사상을 주문해 놓았습니다. 기독교식으로 기리기 전에 제사상을 올려 드리고 싶다는 마음에서 했답니다. 그때 제사상을 자세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어머님 살아계실 때보다 훨씬 잘 차려진 상을 바칩니다. 윤기가 흐르는 흰쌀밥을 가득 담고, 반듯하고 먹음직스럽게 생긴 생선과 과일이 올라가고 나물도 색깔을 맞추어 올라갑니다. 좋은 것과 귀한 것을 드린다는 뜻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럴수록 죄송한 마음만 더욱 진해졌습니다. 살아계실 때 해 드려야지 돌아가신 뒤에 잘 해 드리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싶어서 입니다. 출애굽기와 레위기 안에는 하나님께 올리는 제사에 대한 지시가 자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이나 전병, 수송아지나 염소 등이 속죄 제사에 쓰일 때 어떻게 준비해서 올려야 하는지가 적혀 있습니다. 음식을 먹는 것은 사람으로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조건입니다. 먹지 않으면 살 수가 없기에 어쩌다 먹지 않고 매일 먹으며 삽니다. 믿음과 먹는 일은 아주 비슷한 일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 – 무신론자 -도 신이 없다고 “믿는” 사람이라는 말을 합니다. 누구나 다 뭔가를 믿는다는 뜻입니다. 믿는 일처럼 먹는 일도 혼자도 하고 여럿이 같이도 합니다. 맛있어 감춰놓고 먹으려해도 혼자 먹는 것 보다 같이 먹어야 맛있습니다. 많이 먹는 날이 있는가 하면 조금 먹는 날도 있습니다. 입맛이 없어도 먹어야 할 때가 있고 먹고 싶어도 참아서 속을 비워야 할 때도 있습니다. 무엇을 먹느냐가 나를 형성하듯이 무엇을 믿느냐가 나를 정의합니다. 살기 위해 먹는거지 먹기 위해 사는게 아니라고 하지만, 먹을 것을 구해야 하지 않는다면 사는 일에 열심을 내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사는 데 믿음이 필요한 것은 맞지만 믿음이 우리를 살게 한다는 것도 맞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니 그분을 먹는 것입니다. 예수로부터 생명을 취하고, 내 생명을 예수께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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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옛날이나 지금이나 물질에 대한 인간의 욕심은 결국 인간을 파멸로 몰고갔습니다. 먹고 사는데 걱정 없으려 부를 축적하려 하지만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생기고. 그 부족함은 어느세 마음을 불안에 떨게 합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보고 듣고 먹지 못하면 그 불안에서 해어나오지 못합니다. 저도 곧잘 그런 불안에 메어지내기도 합니다. 다만 감사한건 기도할 수 있는 마음 주시고 주변사귐을 통해 저를 온전한 길로 인도하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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