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7장 1-24절: 때를 분별하며 사는 삶

해설:

7장은 초막절에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초막절은 이스라엘 백성의 40년 광야 유랑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절기였습니다. 이 기간 동안 유대인들은 잎이 넓은 나뭇가지로 초막을 만들어 일 주일 동안 그곳에서 지내면서 조상들이 당했던 고난을 기억했습니다. 유대인 성인 남성들은 이 절기 동안에 예루살렘으로 순례를 떠났는데, 예수님의 동생들도 그렇게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도 예루살렘으로 가기를 권합니다. 당시에 예수님은 유대 사람들의 반감 때문에 주로 갈릴리 지역에서 활동하셨습니다(1절). 그 사정을 모르고 있던 동생들은 탁월한 지혜와 능력을 가진 형이 갈릴리에서 썩고 있는 것을 안타까이 여겼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내 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6절, 8절)고 하시면서 갈릴리에 남으십니다(9절). 

동생들이 예루살렘을 향해 떠난 후 예수님은 혼자서 그곳으로 향하십니다(10절).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으려 했던 것이 아니라 동생들과 함께 다니면서 당신을 드러내기를 원치 않았던 것입니다. 예루살렘에는 이미 예수님에 관한 소문이 퍼져 있었고, 그분에 대한 견해는 다양했습니다. 그러나 그분에 대해 드러내 놓고 좋은 말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38년 된 병자를 안식일에 고쳐 주었다는 이유로 예수님을 제거할 기회를 찾는 유대인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 주일 동안 지속된 명절의 중간 즈음에 이르자 잠행을 하시던 예수께서 성전 뜰에서 사람들을 모아 놓고 말씀을 가르치십니다. 듣던 사람들은 그 지혜에 놀랍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정식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는 것을 생각하며 의문에 빠집니다(15절). 예수님은 당신의 가르침이 당신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답하십니다(16-17절). 당신은 당신 자신의 영광이 아니라 당신을 보내신 하나님의 영광을 구할 뿐이며, 그렇기에 자신 안에는 불의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18절).

이어서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도전합니다. 안식일에 38년 된 병자를 고친 것이 모세의 율법을 어긴 것이라고 생각하여 그들은 예수님을 의심하고 박해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않았느냐? 그런데 너희 가운데 그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19절)고 도전하십니다. 그들 자신도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서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예수님을 죽이려 하고 있으니, 말이 되느냐는 질문입니다. 그러자 그들은 “당신은 귀신이 들렸소. 누가 당신을 죽이려 한다는 말이오?”(20절)라고 반문합니다. 자신들의 숨겨진 생각이 드러나자 엉뚱한 혐의를 뒤집어 씌운 겁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할례법의 전통을 예로 들어 그들을 몰아 부치십니다(22절). 유대인들은 할례를 안식일에 베풀었습니다. 안식일에 대한 율법과 할례에 대한 율법이 충돌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할례에 대한 율법을 지키기 위해 안식일 율법을 위반했습니다. 그 예를 드시면서 예수님은, 만일 안식일에 할례를 행할 수 있다면, 안식일에 38년 된 병자를 고치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느냐고 물으십니다(23절).

묵상:

동생들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형님이 어떤 분인지를 드러내라고 했을 때 예수님은 “내 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 그러나 너희의 때는 언제나 마련되어 있다”(6절)고 대답하십니다. 예수님은 분명한 목적과 사명과 계획을 가지고 사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에게 있어 “때”는 매우 중요했습니다. 그런 때를 가리킬 때 헬라어 ‘카이로스’가 사용됩니다. 예수님은 나설 때와 물러설 때, 올라갈 때와 내려 올 때, 당신을 숨길 때와 드러낼 때를 늘 분별하며 사셨습니다. 그렇기에 때가 왔다 싶을 때 예루살렘에 가셨고, 때가 왔다 싶을 때 십자가에 오르셨습니다. 그렇게 사셨기에 마지막에 “다 이루었다”(19:30)라고 말씀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런 목적도, 사명도, 계획도 없이 사는 사람에게는 “때가 언제나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때를 분별할 이유도,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땡기는 대로 먹고, 끌리는 대로 가고, 말하고 싶을 때 하면 됩니다. 어제 아침 신문에서 어떤 사람이 쓴 말이 생각납니다. “하고 싶은 말을 하면 처음에는 후련한데 시간이 지나면 찝찝해지고, 하고 싶은 말을 참으면 처음에는 답답한데 나중에는 잘 했다 싶어진다”는 말입니다. 때를 분별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언제나 후회할 일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때가 언제나 마련되어 있다는 말은 아무 때도 때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때를 분별하지 않고 살다 보니 아무 때나 때가 되는 것이고, 그렇게 살다 보니 한 번도 때를 제대로 만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때를 분별하며 사는 사람의 마지막 말은 예수님처럼 “다 이루었다”는 것이 될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의 마지막 말은 버나드 쇼의 비문처럼 “그럭저럭 하다가 이렇게 될 줄 알았지”가 될 것입니다. 

 

3 thoughts on “요한복음 7장 1-24절: 때를 분별하며 사는 삶

  1. 때를 분별하며 하나님의 계획을 충실히 실행하시는 예수님의 지혜를 배웁니다, 선견지명이 있어 때를 분별 할줄 아는 지혜를 구하지만 나같은 범인에게는 그게 그거 같은 우둔 함만을 경험하며 당일의 안위만을 쫓는 어리석음을 발견하곤 합니다.
    주님의 지혜를 구하며 주님의 계획에 동참하는 혜안을 주시고 늘 깨어 주님을 마지 할 자세로 믿음을 간구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지키는 주일과 구약 시대 유대안의 안식일과 혼돈하지 않고 주남의 낳로 지키며 분별의 지혜가 있기를 간구합니다.

    Like

  2. 세상의 때가 악합니다, 항상 깨어있어 주님의 때를 알고 기다리는 지혜를
    원 합니다. 한없이 선하시고 인자하신 주님이 자녀들의 구원을 간구하는
    기도를 주님의 때에 응답 하실줄 믿습니다. 이웃과 더불어 주님앞에 설 때를
    준비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Like

  3. 요한복음은 생각하면서 읽고, 읽고나서 또 생각해야 할 것이 많은 복음서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도 들으면 (읽으면) 곧바로 이해한 것 같지 않고 다른 뜻이 또 있을 것 같습니다. 당신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고 하시면서 너희 때는 항상 준비되어 있다고 하십니다. 예수께서는 늘 하나님의 뜻을 행하시고 그 일은 다 하나님의 시간표에 맞추어 일어납니다. 가나 혼인잔치 때에도 예수님은 당신의 때가 아직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잔치에 온 사람들을 위해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은혜를 받는 때는 언제나 준비되어 있는지 모릅니다. 오늘 본문에서 초막절에 성전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자 모인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가르치시자 그들은 듣고 놀라워했습니다. 내 삶 속에서도 “우연히” “준비 없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은혜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알리시지만 유대인들은 아직도 깨닫지 못합니다. 눈과 귀가 열리지 않았습니다. 오늘도 기도합니다.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날을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Like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