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7장 25-39절: 생수의 강

해설:

예수께서 자신을 드러내신 후 “예수가 과연 그리스도인가?”라는 의문이 사람들 사이에 퍼졌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그리스도 즉 메시아에 대해 다양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는 “그리스도가 오실 때에는, 어디에서 오셨는지 아는 사람이 없을 것”(27절)는 믿음이었습니다. 이 믿음이 옳다면, 예수님이 그리스도일 수 없습니다. 그분이 나사렛에서 자랐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생각을 아신 예수님은 당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그 근원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28-29절). 표면적으로 본다면 그분은 나사렛 출신이며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입니다. 하지만 진실은 더 깊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에게서 왔으며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발언으로 인해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더욱 미워합니다. 하지만 그분에게 손을 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분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30절). 반면, 이 일로 인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들은 그분이 행하신 표징들을 근거로 그분을 그리스도로 여겼습니다.

상황이 급박해졌다고 느낀 바리새파 사람들은 대제사장들에게 이 사실을 알립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체포하기 위해 성전경비병을 보내기로 결정합니다(32절). 성전 경비병들이 다가오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은 “나는 잠시 동안 너희와 함께 있다가, 나를 보내신 분께로 간다. 그러면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것이요, 내가 있는 곳에 너희가 올 수도 없을 것이다”(33-34절)고 말씀하십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이방인들에게로 가서 숨겠다는 뜻으로 그렇게 말씀하신 것으로 받아들입니다(35절). 예수님은 영적인 차원에서 말씀하시고, 유대인들은 육신적인 차원에서 그 말씀을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 주일 동안 지속되는 초막절의 가장 중요한 날은 마지막 날입니다. 그 날에 예수께서는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로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이 말한 바와 같이, 그의 배에서 생수가 강물처럼 흘러나올 것이다”(37-38절)라고 말씀하십니다. 초막절 기간 동안에 제사장들은 실로암 연못에서 물을 길어다가 오실 메시아를 기다리며 제단에 그 물을 붓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더 이상 물을 길어다 부을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당신이 그리스도 즉 메시아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리스도를 인정하고 믿는 사람에게는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생수가 흐를 것입니다. 요한은 그 물이 “믿는 사람이 받게 될 성령”을 의미한다고 덧붙입니다(39절).

묵상:

초막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동안 광야를 유랑했던 역사를 기억하기 위한 절기입니다. 40년의 광야 유랑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 이르기 위한 여정이었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에 이르기만 하면 “고생 끝 행복 시작”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땅에 정착한 이후에도 그들의 유랑은 계속되었습니다. 육체적으로는 약속의 땅에 안착했지만 내면으로는 여전히 허기와 갈증에 시달렸습니다. 매 년 초막절을 지키며 조상들이 겪었던 고난과 그들이 경험했던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그들은 온전한 안식과 만족을 갈망했을 것입니다. 그 갈망은 지상에 있는 그 누구도 혹은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 즉 메시아가 오실 때에만 채워질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믿는 이들에게 온전한 안식과 만족을 주십니다. 그것은 마치 그의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흐르는 것과 같습니다.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흐르고 있다면 그는 더 이상 물을 마실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되어 그분의 사랑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이와 같습니다. 든든한 안식과 만족을 누립니다. 이 세상의 그 누구도 혹은 그 무엇으로도 해결할 수 없었던 내적인 허기와 갈증을 해결 받습니다.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차이는 살아가는 이유와 동기에 있습니다. 믿는 사람은 이미 만족 했기에 그 만족감으로 살아가고, 믿지 않는 사람은 만족하지 못했기에 그 부족한 것을 채우기 위해 살아갑니다. 겉모습은 같을지 몰라도 한 사람의 내면은 천국이요 다른 사람의 내면은 지옥입니다. 

4 thoughts on “요한복음 7장 25-39절: 생수의 강

  1. 예수님은 끝내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선포하며 인자를 믿는 사람들은 그 배안에서 생명의 강물이 흘어나와 더 이상 목마름이없을 거라고 선언 합니다, 나에게도 성령의 강물이 늘 흘러 넘치기를 기원하며 늘 주님의 줄기에 붙어 있기를 간구합니다.
    세상사에 석기다 보면 문득 내 자신이 주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곤 합니다, 늘 깨어서주님 곁을 떠나지 않게 하시고 지금 주시는 말씀으로 오늘 하루를 온전히 이겨내는 믿음으로 이어질 것을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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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은혜의 바다에서 힘차게 수영하며 몸을 깨끗이 씻기를 원 합니다. 성령 충만하여
    항상 성령의 열매를 맺기를 간구합니다. 헛되고 순간의 세상 부귀 영화보다 영원한 세상이
    줄수없는 은혜와 평강을 이웃과함께 맛보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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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40년동안 광야를 유랑하다 가나안 땅에 도착하고 난 뒤에 이스라엘 사람들의 기쁨과 고난의 연속에 대해서 상상해봅니다. 이스라엘사람들의 고난만큼은 아니라도 저희도 이민자로서 여러 희망을 품고 미국에 와서 살면서 겪었던 기쁨과 어려움을 기억합니다. 앞으로 어떤 어려운 일과 기쁜 일이 있을지 모르지만 십자가 믿음으로 제가 가야할 길 가도록 도와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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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요즘 가게가 한산한 동안 틈틈이 세계사를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서양과 동양을 함께 보면 좋겠지만 쉽게 접할 수 있는 자료들을 따라가다 보니 서양사부터 훑어보는 중입니다. “수박 겉 핥기”식이지만 한 두가지라도 건지는 것이 있을거라는 생각으로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로마제국을 보는 중입니다. 아우구스투스가 팍스 로마나 시대를 열었다지만 왕좌 게임이 소강상태라 평화라고 하는거지 정말 평화가 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기록된 역사가 보여주는 모습도 역사의 중심부에서 살아간 사람들의 모습이 대부분이고 이름 없이, 흔적 없이 살다간 다수의 시민 이주민이나 노예 같은 주변인들의 이야기는 상상만 해 볼 뿐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에 관한 책입니다. 하지만 신화가 아니라 사람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고 있으니 사람도 주요 인물입니다. 왕과 선지자의 삶도 그리고 있지만 하나님과 만난 여러 사람의 이야기가 들어 있습니다. 성경을 읽으면 성경 또한 나를 읽는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됩니다. 예수님은 로마가 세상의 중심이던 때, 로마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았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행복은 의식주의 해결이고, 생명을 위협 당하지 않고 자기가 속한 공동체 안에서 별 탈 없이 살다 가는 것이었습니다. 생수의 강을 약속하시는 예수님은 로마 시대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깨달음 – 로마의 사막을 건너는 법을 가르치신 것 뿐 아니라 오고 오는 시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날까지 모든 인류가 당면할 광야살이에 필요한 물을 약속하십니다. 세상을 호령하는 자들이 주는 물이나 평화는 그들의 조건에 따라 언제 끝날 지 모르지만 예수께서 주시는 물은 모자람이 없는, 늘 충분한 물입니다.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하시는 분. 참 좋으신 분.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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