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7장 40-53절: 있는 그대로

해설:

이 말씀을 듣고 어떤 사람들은 “이 사람은 정말로 그 예언자다”(40절)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신명기 18장 18절에 나오는 모세의 예언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유대인들은 이 예언이 메시아에 대한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생각했습니다(41절).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는 다윗의 후손에서 나올 것이며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이라는 예언을 이유로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41-42절). 그들은 예수님이 갈릴리 나사렛에서 자랐지만 실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으며 다윗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듯, 예수님으로 인해 무리들 가운데 분열이 생겼고, 그분을 잡으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분을 믿는 사람들 때문에 실행하지는 못삽니다. 

성전 경비병들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에게서 받은 소임 즉 예수를 체포하는 일에 성공하지 못하고 돌아갑니다. 빈 손으로 돌아온 이유를 묻자 그들은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지금까지 아무도 없었습니다”(46절)라고 답합니다. 그러자 그들은 “지도자들이나 바리새파 사람들 가운데서 그를 믿은 사람이 어디에 있단 말이냐?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지렁이들은 저주받은 자들이다”(48-49절)라고 역정을 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성전경비병같은 무지렁이들보다 영적으로 뛰어나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은 그들의 자의식이 그들의 눈을 가리고 있었습니다. 

한 밤 중에 예수님께 찾아와 영생의 길에 대해 물었던 니고데모가 그들 중에 있었습니다. 그는 산헤드린 의원 중 한 사람이었기에 그 자리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율법 규정에 따라 그 사람의 말을 직접 들어보거나 공정한 조사를 한 다음에 결정하자고 제안합니다(50-51절). 그러자 그들은 갈릴리에서 메시아가 태어난다는 예언은 없다면서 그의 제안을 거절합니다.

묵상:

초막절 기간 동안에 예루살렘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읽으면서 우리는 ‘선입견’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새삼 자각합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안다는 생각이 때로는 실제로 그것을 알아가는 일을 방해하곤 합니다.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을 만났던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 예수님을 보지 않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선입견에 비추어 판단했습니다. 그분의 말씀을 듣고 놀라면서도 아무런 교육도 받지 않은 사람이라는 생각에 믿음을 놓아 버립니다. 그분의 말씀과 행적을 보고 “그리스도가 아닐까?” 싶다가도 그리스도에 대해 배운 바를 생각하고 그 의문을 놓아 버립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 가지고 있던 그릇된 지식(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모르는) 때문에 믿음에 이르지 못합니다. 율법에 대해 좀 안다고 생각했던 유대인들은 이렇게 눈으로 보고 깨닫는 바를 부정하고 있는데, 그런 선입견이 없었던 성전 경비병들은 예수님을 제대로 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 대한 우리의 믿음을 방해하는 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선입견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정확하지 않은 지식들 혹은 하나님에 대한 여러 가지 근거 없는 선입견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하고 믿음의 길에서 벗어나게 만듭니다. 진실한 믿음에 이르기를 원한다면 우리의 마음을 채우고 있는 모든 선입견을 내려 놓고 겸손히 주님 앞에 고개 숙여야 합니다. 내 생각과 기대를 따라 행하는 구원자는 실은 나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나의 기대와 선입견을 넘어서서 행하시는 분이어야 나를 구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 주님, 주님 모습대로 나에게 오십시오!”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One thought on “요한복음 7장 40-53절: 있는 그대로

  1.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한 말 때문에 챙피했던 적이 있습니다. 확실하게 아는 일 아니면 입을 열지 말아야지 결심을 합니다.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확실하게 믿고 있다가 발등을 찍힌 적도 있습니다. 믿을 것이 하나도 없다는 허망함이 몰려옵니다. 어제까지 알던 일이 실은 틀렸다는 것을 오늘 알게 되기도 합니다. 진리란 무엇인가, 절대진리라는 것이 있기는 한가, 상황에 따라 시간에 따라 사실이 사실 아닌 것으로 달라질 수도 있나…혼란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믿음은 이성의 영역이 아님을, 그래서 알아야 믿게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키는 본문입니다. 어려워서, 이해할 수 없어서 믿을 수가 없다는 말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닙니다. 생각 없이 사는 사람이 아닌데 이성의 필터를 통과하지 않는 것들을 무조건 다 “좋은 것” “옳은 것”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사고의 과정, 이성의 발달에 영향을 주는 것들을 곰곰 생각하는 것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내 이성의 필터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필터 자체에 선입견이 끼어 있지는 않은지, 내 안경 렌즈 자체가 깨끗한지 늘 신경을 쓰지 않으면 모르고도 아는 척하는 우스운 사람이 되거나 알면서도 당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될 뿐입니다. 아침마다 말씀을 읽으며 생각을 가다듬는 일은 필터를 세척하는 일입니다. 말씀의 거울에 얼굴을 비추어보며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지 살펴보는 일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살았다면 나 또한 갈릴리에서 무슨! 이라며 극구 예수님을 깎아내렸을지, 아니면 이 분은 뭔가 다르다, 이 분을 좀 더 알고 싶다며 마음을 열었을지…..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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