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8장 1-20절: 너 자신을 보라!

해설:

예수님이 성전을 떠나 올리브 산에 계실 때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간음을 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자를 끌고 예수님께 옵니다. 율법에 따르면, 그 여인은 투석형을 당해야 합니다(레 20:10; 신 22:22-24). 그들은 사랑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그 여인에게 사랑의 가르침을 적용하신다면 모세의 율법을 위반해야 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고발할만한 좋은 구실이 됩니다(6절). 그래서 그 여인을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아무 말 없이 앉으셔서 땅바닥에 무엇인가를 쓰셨습니다(6절). 군중의 성난 감정이 누그러지기를 기다렸던 것입니다. 한 참 후에 그들이 다그치자 예수님은 일어나셔서 “너희 가운데서 죄가 없는 사람이 먼저 이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7절)고 말씀하시고 다시 앉으셔서 계속 쓰셨습니다. 그러자 “나이 많은 이로부터 시작하여”(9절) 하나씩 떠나갔습니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젊은 사람들보다 죄의식이 더 컸기 때문에 그랬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을 용서해 주시면서 다시는 죄 짓지 말라고 당부하십니다(11절). 

예수님은 다시금 성전 뜰로 오셔서 유대인들과 대화를 나누십니다. 먼저 그분은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사람은 어둠 속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12절)라고 말씀하십니다. 태양빛이 모든 물질 생명의 빛이듯, 영적 생명의 빛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예수님의 자기 주장이 과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정신에 문제가 생겼거나 영적 사기꾼이라고 의심했습니다(13절). 그에 대해 예수님은, 자신의 진짜 정체를 알지 못하기에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답하십니다. 당신은 하늘 아버지께서 보내신 분인데, 그들이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니 자신에 대해서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14-20절).

묵상:

우리의 눈은 바깥으로 향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잘못은 잘 보는 반면 자신의 허물은 잘 보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에게 있는 불의에 대해서는 인식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불의를 비판하고 공격합니다. 자의식(self-righteousness)이 강한 사람들일수록 그런 경향이 강합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부지런히 율법을 연구하고 철저하게 지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그들의 자의식은 매우 높았습니다. 그 높은 자의식이 자신들의 부정과 위선을 보지 못하게 만들었고 또한 다른 사람들의 불의와 부정을 비판하고 공격하게 만들었습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에 대한 대화를 통해 예수님은 그들의 자의식이 얼마나 거짓된 것인지를 깨닫게 하십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땅바닥에 쓰신 글이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이었다고 농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십계명을 쓰셨을 것이라고 추측 하기도 합니다. 어쨋거나 예수님의 의도는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향해 있던 그들의 눈을 돌려 자신을 보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다행히도 그들은 잠시나마 자신들의 허위의식을 깨달았고, 그래서 나이든 사람들부터 하나씩 돌아갔습니다. 자신의 죄 없음을 증명하기 위해 돌을 던지고 싶은 사람이 없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권위 앞에서 차마 그럴 수 없었을 것입니다. 

3 thoughts on “요한복음 8장 1-20절: 너 자신을 보라!

  1. 매일 정죄를 많이 합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부터 멀리 유명한 정치인과 기업인들까지 그들의 말과 행동을 비판하며 세상의 불협화음은 그들 탓이라 생각합니다. 내가 듣기 싫은 소리를 하나님의 뜻이라고도 생각합니다. 내가 하나님이 되어있고. 심판의 칼을 마음의 어둠 속에서 마구 휘두르다. 불안과 불만만 남아있습니다.

    예수님 제 마음에 빛으로 오셔서 제 마음을 따듯하게 하시고. 다른 이들을 정죄의 눈으로 보게 하지 말고 우리 모두의 죄성과 그 죄를 십자가로 대속하신 선물 기억하게 하소서. 죽음을 물리치신 부활영광 마음에 넘쳐 평안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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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의인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다는 말씀을 기억합니다. 오직 예수님의 보혈로
    깨끗이 죄 사함을 받습니다. 간음을 하려면 대상이 있어야 하는데 여인만
    잡혀오고 상대방 남자는 잡히지 않았단것은 혹시나 상대가 바리세나
    사두게파 사람이 아닌지 의심도 해보게 됩니다. 진정으로 주님은 사람을
    살리시는 사랑이시고, 죄를 심판 하시는 심판자 이십니다.
    사람을 살리시는 사랑이시고 죄를 미워하시는 심판자 예수님을 세상에
    알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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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이야기에 나오는 여자의 입장이 되어 봅니다. 성전까지 여러 남자들의 거친 손에 밀리고 맞으면서 끌려갑니다. 돌에 맞아 죽을것이 뻔합니다. 들키면 죽을 줄 알았지만 정작 이렇게 죽게될 줄은 몰랐습니다. 부끄럽기도 하고 후회막심이기도 하고, 억울하고 분하기도 합니다. 너무 오래 맞지는 말고 빨리 죽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의 소란하고 웅성거리던 소리가 점점 작아지더니 아주 고요해졌습니다. 돌맹이가 날라올 줄 알았는데 안 날라옵니다. 예수님이 뭐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다 어디 갔냐고 묻는것 같습니다. 고개를 좀 들고 보니 그 많던 남자들이 안 보입니다. 예수님이 또 말을 건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가라.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분명히 죄를 지었는데, 걸리면 죽을 죄라는 것을 알면서도 오늘만, 한 번만, 이러면서 살았는데 죄인이라고 나무라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그냥 가라고 하십니다…다시는 이 자리로 오지 않을 것입니다. 굶어 죽더라도 이제는 그렇게 살지 않으렵니다. 죄를 짓지 않겠습니다. 살려주신 은혜를 잊지 않으렵니다. 저 분을 따라 가야겠습니다. 저 분 가시는대로 따라다니며 살겠습니다….인생이 바뀔 때는 이처럼 짧은 순간에 일어나는 사건으로 바뀌는 경우가 있습니다. 용서받은 여자만 인생이 달라졌을까요.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던지라”는 말씀이 마음에 꽂혀 자신의 죄를 돌아보게 된 사람이 있다면 그도 다른 인생을 살게 되었을 것입니다. 드러난 죄와 은밀한 죄의 차이만 있을 뿐 – 그것도 시간의 차이 안에서만 – 죄가 없는 사람,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예수님이 가르치십니다. 예수님의 긍휼함은 여자에게만 흘러간 것이 아닙니다. 이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에게 은혜가 임했습니다.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시고, 다시는 예전의 자리로 돌아가지 말라고 하십니다. 어둠 속에서 살지 말고 생명의 빛이신 당신을 믿으라고 하십니다. 나도 위선과 무지와 자기합리화의 자리로 다시 가지 않기를 원합니다. 오직 예수님의 빛만 따르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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