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8장 39-59절: 믿는다는 것

해설:

유대인들은 다시금 예수님께 “우리 조상은 아브라함이오”(39절)라고 답합니다. 그들은 육신적인 혈통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지만 영적으로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떠나 살고 있었습니다. 만일 그들이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면 예수님을 반대하고 미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40절, 42절). 예수님은 그들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이어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거짓의 아비”(44절)인 사탄에게 속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진리를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거부하는 것은 그들이 악마의 자식이 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47절).

그러자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혹은 “귀신이 들렸다고”(48절) 모함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자신을 배척하고 미워하는 이유가 진리를 말씀하시는 예수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알지 못하는 그들에게 있다고 답하십니다. 그러면서 그분은 “나의 말을 지키는 사람은 영원히 죽음을 겪지 않을 것이다”(51절)라고 말씀하십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미친 것이 분명하다고 단정합니다(52절). 예수님이 말씀하신 죽음을 육신적인 죽음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육신적인 차원에서 본다면 예수님은 지금 헛소리를 하고 계신 것입니다. 수천 년 전에 죽은 아브라함이 당신을 기다렸다고 말하고 있으니 말입니다(56절). 

유대인들은 “당신은 아직 나이가 쉰도 안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단 말이오?”(57절)라고 묻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기준에 50살은 완숙에 이르는 나이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내가 있다”(58절)고 답하십니다. “내가 있었다”고 하지 않으시고 “내가 있다”고 답한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일차원적인 시간 안에 존재하는 분이 아닙니다. 영원히 존재하시는 분입니다. 그렇기에 그분에 대해서는 과거시제와 미래시제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 자신을 “나는 나다”(I am who I am)이라고 소개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분은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언제나 “있는” 분입니다.

묵상: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은 하나님의 영원하고도 절대적인 차원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1차원 시간(과거에서 현재로 그리고 미래로 진행하는 일직선의 시간)과 3차원 공간 안에 살고 있습니다.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1차원 시간과 3차원 공간을 넘어서는 분입니다. 그 차원을 가리켜 우리는 “영원” 혹은 “절대”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은 그 차원에서 우리의 차원으로 내려 오셨습니다. 그것이 “성육신”의 사건입니다. 육신을 입고 1차원 시간 안으로 들어 오셨지만, 그분은 영원 가운데 거하시는 분입니다. 그렇기에 그분에 대해서는 “있었다”(과거) 혹은 “있을 것이다”(미래)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못합니다. 그분은 언제나 “있는” 분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한결같은 분이십니다”(히 13:8)라고 썼습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그런 분입니다. 믿음이란 그분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영원히 죽음을 겪지 않을 것”(51절)입니다. 육신적인 죽음은 누구에게나 동일하지만, 믿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절대적이고 영원한 차원으로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는 사람은 죽고 나서 영생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는 순간 그 절대적이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접속되는 것이고, 그 나라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금 이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우리에게 일어난 일입니다. 

3 thoughts on “요한복음 8장 39-59절: 믿는다는 것

  1. 인간은 아무리 뛰어나도 인간이기에 세월의 흐름을 막을 수 없습니다. 여러 권력자들도 죽음이 두려워 갖은 방법으로 생명을 연장하려 했습니다. 진시황이 불로초를 찾으려 했던 거 처럼요.

    저도 자기존속에 메달려 하나님을 멀리하고 염려와 불안감에 빠져왔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제 영혼을 이끄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하루도 첫사랑 마음에 품고 매호흡에 감사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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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세상의 상식과 이치에 맞지 않지만, 주님의 말씀이 진리 이기에, 믿습니다.
    확고 부동한 믿음을 원합니다.
    영생과 천국을 맛보며 이웃과 더불어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세상에 알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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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유대인들과 예수님 사이의 긴장이 계속됩니다. 귀신 들린 사람의 말이라면서도 계속 맞서는걸보면 “미친 소리”에도 어딘가 찔리는 데가 있었나봅니다. 유대인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형식으로 예수님은 여러가지를 말씀하십니다. 모세를 통해서는 이집트에서 풀려난 시점까지 갔었는데 이제 아브라함을 말씀하심으로 유대인들의 원뿌리까지 되돌아갔습니다. 시공의 한계 속에서 하루씩 사는 우리에게는 아주 먼 옛날 조상때의 일이지만 예수님께는 지금이나 영원이나 다 동시입니다. “우주적-universal”이라는 표현을 쓸 때 어디에도 다 통한다는 뜻으로 쓰는데 그런 말을 우리가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진리는 시공을 초월해 누구에게나 다 진리라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이런 진리가 몹시 불편했을 것입니다. 자기들의 사고와 전통의 틀에 잘 맞는 진리 속에서 바르게 살다 가는 것을 유대인의 영광으로 알고 있는데 이것을 뒤흔드는 청년이 앞에 서있습니다. 8장의 시작이 간음한 여인을 돌로 치려는 장면이었는데 마지막 장면 또한 유대인들이 돌을 집어던지려는 것으로 끝납니다. 누군가를 돌로 쳐서 죽여야만 화가 풀리려나요….그래도 풀리지 않을 자기혐오이고 자기기만입니다. 예수님의 빛이 내 마음 구석구석을 비추어주실 때 부끄럽지만 감사함으로, 죄송하지만 감사함으로 받기를 원합니다. 내 안에 우주를 품고 우주 안에서 나를 발견하는 신비를 맛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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