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0장 22-42절: 마음을 지켜라

해설:

“성전봉헌절”(22절)은 과거에 “수전절”이라고 번역했습니다. 12월에 우리가 성탄절을 지키는 것처럼 유대인들은 ‘하누카’라는 절기를 지킵니다. 주전 2세기에 셀류시드 왕조에 의해 예루살렘이 점령 당하고 성전이 훼손되었을 때 마카비 형제가 반란을 일으켜 성전을 되찾은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기 위한 절기입니다. 이 절기에도 많은 유대 남성들은 예루살렘으로 순례를 왔습니다. 이 시기가 되면 유대인들은 마카비같은 메시아가 나타나 주기를 갈망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성전 경내에서 거닐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을 발견한 유대인들은 “당신이 그리스도이면 그렇다고 분명하게 말하여 주십시오”(24절)라고 청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내가 너희에게 이미 말하였는데도, 너희가 믿지 않는다”(25절)고 답하십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더 분명한 말이나 더 강력한 표징이 아니었습니다. 믿으려는 마음 자체가 그들에게 없었기에 예수님이 하시는 일들을 보고도 믿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일을 당연하게 받아 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양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26-27절). 양은 자기 목자의 목소리를 알아 듣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한다는 말은 그들이 하나님을 떠났다는 뜻입니다.

그들 중에는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을 보고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아차린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목자이신 예수님께 맡겨 주신 양들입니다. 하나님은 만유보다 크시기에 양들을 예수님의 손에서 빼앗아 갈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양들은 목자이신 예수님 안에서 영생을 누립니다. 예수님과 하나님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27-30절). 

예수님께 의혹과 적개심을 품고 있던 유대인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돌을 들어 치려 합니다(31절). 율법에 하나님을 모독하는 사람은 돌로 쳐서 죽이라고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레 24:16). 그러자 예수님은 당신이 선한 일을 하는데 왜 죽이려고 하느냐고 물으십니다(32절). 그들은, 아무리 선한 일을 많이 해도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한 것을 용서할 수 없다고 답합니다(33절). 예수님은 시편 82편 6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답하십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말씀을 받은 사람을 신이라고 하셨다면, 하나님의 보냄을 받아 그분의 일을 하고 있는 자신은 더욱 그렇게 불릴만 하다고 하십니다(34-36절). 그러면서 당신이 하는 일을 제대로 본다면 “아버지가 내 안에 계시고 또 내가 아버지 않에 있다는 것”(38절)을 깨달아 알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그들의 분노를 더욱 자극할 뿐이었습니다. 그들이 잡으려 하자 예수님은 그들의 손을 피하여 벗어나셔서 세례 요한이 세례를 주던 유대 광야에 머무십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찾아와 믿게 되었습니다(39-42절).

묵상:

인생에 있어서 마음은 등불과 같고 항해자의 키와 같습니다. 마음이 정하는 대로 보고, 마음에 있는대로 말하고, 마음이 정한 대로 걸어갑니다. 마음의 눈이 닫혀 있으면 제 아무리 놀라운 광경을 보여 주어도 보지 못합니다. 마음의 귀가 닫혀 있으면 천둥과 같은 음성도 듣지 못합니다. 반면, 마음이 여리고 예민하고 열려 있으면 잎새에 이는 작은 바람도 볼 수 있고 세미한 음성도 듣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의 손잡이는 안에만 있습니다. 밖에서는 그 마음을 열 방법이 없습니다. 마음의 주인이 문을 닫아 놓으면 누구도 그 마음을 열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두 종류로 나뉩니다. 하나는 무슨 말도 알아듣지 못하고 어떤 표징도 알아 차리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믿지 않기로 마음의 문을 닫아 놓은 사람들입니다. 다른 하나는 예수님에게 마음이 열린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예수님이 행하시는 일들을 통해 하나님의 손길을 봅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예수님과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마음의 눈이 점점 더 열리고 귀가 밝아집니다. 반면, 마음이 닫힌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한 오해와 반감이 점점 더 굳어져 갑니다.

“그 무엇보다도 너는 네 마음을 지켜라. 그 마음이 바로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이다”(잠 4:23)라는 말씀의 의미를 절감하는 아침입니다. 

2 thoughts on “요한복음 10장 22-42절: 마음을 지켜라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고 보이지 않는 것의 증거입니다. 그 믿음을 받고 두텁게 하려면 우리가 마음을 열고 성령님의 음성에 귀를 귀울여야 합니다.

    제 신앙이 자신을 위한 기복과 인과에 얽메이지 않도록 기도합니다. 세상에 내세울만한 징표를 쫓지 않고 고난과 기쁨 중에 변치않는 사랑의 마음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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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작년에 미국에서는 대법관 임명을 앞둔 사람의 대학생 시절 행동을 놓고 고발자와 후보자의 청문회로 시끄러웠습니다. 올해 한국에서는 법무장관과 그의 일가를 반대하는 사람들과 지지하는 사람들로 나뉘어 한국 전체가 출렁였습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는 동안 마음을 지켜 평상심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은 듯 느껴집니다. 병이 들면 오직 아픈 생각, 병 생각 뿐으로 가득차서 다른 생각은 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양분화되는 이슈를 놓고 어느 쪽에 서는지는 중요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많은 경우 화제와 논란의 중심에 놓인 사람이나 이슈 그 자체보다 그것을 대하는 사회의 모습, 특히 사회의 관심이 쏠리는 부분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하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또 다른 절기에 성전에서 또 한번 논란의 중심에 섭니다. 이번에도 유대인들이 돌을 던지려 하는데 예수님은 피하지않고 왜냐고 물으십니다. 어떤 일이 너희들을 그리도 화나게 만드느냐고 물으십니다. 명절에 성전에서 유대인들과 목숨을 놓고 대결하는 이 장면은 활자로는 그 긴장감이 전달되지 않는데 우리 사회의 사건들을 회상하며 뉴스를 통해 그 상황을 보던 때에 견주어보면 긴박감과 심각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일이 어렵지 않았던 사람들 – 그분의 기적이 하늘로부터 온 것임을 볼 수 있던 사람들, 하나님을 깊이 묵상하며 더욱 사랑하기를 바라던 사람들, 사는 것이 너무 힘든 병자와 이방인들…은 예수님이 서 계신 강 한 가운데로 선뜻 발을 들이는, 점프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반대로 예수님을 믿어볼 생각 조차 하지 않던 무리는 지금 이대로가 좋은 사람들, 양손에 떡을 쥐고 있어 놓을 수 없는 사람들, 하나님은 자기편이라고 확신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믿음은 주체적으로 결단해서 얻는 부분도 있지만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아는 것처럼 노력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선물일 때가 많습니다. 스스로 불을 밝힐 수 없는 우리는 다만 그분의 은혜에 기대어 살 뿐입니다. 청문회는 끝나고, 명예의 자리에서도 언젠가는 내려와야 합니다. 다 자기 앞의 삶을 살 뿐입니다. 코람 데오. in the presence of God…하나님은 우리의 “정답”보다 당신께 올리는 질문에 더 관심을 기울이신다는 생각이 드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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