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1장 1-44절: 부활과 생명

해설:

성전 산 동쪽 올리브 산에 베다니라는 마을이 있는데, 그곳에 사는 세 남매 마르다, 마리아 그리고 나사로는 예수님께 특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5절). 예수께서 그 동네를 방문했을 때 마리아가 주님께 향유를 붓고 자기의 머리털로 주님의 발을 씻어 드렸는데(2절), 그 일로 인해 특별한 관계가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활동하시는 동안에 예수님은 주로 나사로의 집에 머물렀을 것입니다.  

어느 날,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 즉 나사로가 병에 걸려 위독하다는 소식이 예수님께 전해졌습니다(3절). 예수님은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병이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이 영광을 받게 될 것이다”(4절)라고 말씀하시고는 그곳에 이틀 더 체류하십니다. 이틀 후에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나사로의 집으로 가기 위해 다시 유대 지방으로 가십니다. 제자들은 유대로 가는 것을 반대합니다. 예수님을 해하려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나사로를 깨우기 위해 가시겠다고 하십니다(11절). 그가 이미 죽은 것을 예수님은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14절). 하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뜻을 알아듣지 못합니다. 심지어 도마는 예수께서 유대인들과 결전을 벌이러 가시는 줄로 오해합니다(16절).

예수께서 베다니에 도착하셨을 때 나사로는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난 뒤였습니다(17절). 예수께서 전갈을 받으셨을 때 이미 운명을 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마르다가 마중하러 나갑니다. 예수님을 만난 마르다는 “주님, 주님이 여기에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을 것입니다”(21절)라면서 속히 서둘러 오지 않으신 것에 대한 서운한 마음을 드러냅니다. 그러면서도 “그러나 이제라도, 나는 주님께서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하나님께서 다 이루어 주실 줄 압니다”(22절)라고 말합니다. 마르다가 말하는 “무엇이나” 안에 죽은 나사로가 살아나는 것까지 포함되어 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네 오라버니가 다시 살 것이다”(23절)라고 대답하십니다. 마르다는 “마지막 날 부활 때에 그가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은 내가 압니다”(24절)라고 응답합니다. 당시에 많은 유대인들이 마지막 날에 모든 의인들이 부활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마르다는 예수께서 그것을 말씀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할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26절)고 물으십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분의 부활과 생명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분을 믿는 사람은 그분의 존재 상태(영원)로 이전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지막 날에 완전히 이루어질 일이지만 지금 이곳에서부터 시작될 일입니다. 마르다는 아직도 예수님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 헤아리지 못한 채로 “예, 주님! 주님은 세상에 오실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내가 믿습니다”(27절)라고 고백합니다.

마르다는 이렇게 말하고 나서 다시 집으로 돌아갑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를 불러 오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28절). 마리아가 급히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달려가자 문상객들도 따라 나섭니다. 예수님을 만난 마리아는 마르다와 같은 말로 서운함을 표시하면서(32절) 슬프게 웁니다. 예수님은 마리아가 우는 것을 보시고 “비통하여 괴로워하셨”(33절)습니다. 또한 그분은 나사로의 무덤에 이르러 눈물을 흘리십니다(35절). 그토록 나사로와 두 자매를 사랑하셨던 것입니다. 

무덤 가까이 가신 다음 예수님은 무덤 문을 막아 놓은 돌을 옮겨 놓으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마르다는 “주님, 죽은 지가 나흘이나 되어서, 벌써 냄새가 납니다”(39절)라고 답합니다. 예수님은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리라고, 내가 네게 말하지 않았느냐?”(40절)고 말씀하시고는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십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내 말을 들어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41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분은 이미 나사로를 살려 달라는 기도를 올리셨고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 주실 것임을 아셨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기도하시고 나서 예수님은 “나사로야, 나오너라”(43절)고 외치십니다. 그 말이 떨어지자 잠시 후에 무덤 안에서 허연 물체가 걸어 나옵니다. 예수님은 “그를 풀어 주어서, 가게 하여라”(44절)고 말씀하십니다.

묵상: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이것은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가장 잘 드러내는 말씀 중 하나입니다. ‘부활’은 ‘소생’ 아니고 ‘생명’은 ‘목숨’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로서는 다 알지 못할 영원한 생명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라는 말씀은 “나는 시간에 속한 존재가 아니다”, “나는 이 세상에 속한 존재가 아니다”, “나는 물리적인 차원에 묶인 존재가 아니다” 혹은 “나는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넘어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의미로 보자면 “나는 나다”라는 말과 같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은 그분 안에서 그분의 영원한 차원으로 옮겨가는 것을 뜻합니다. 

믿는다는 것은 인격적으로 하나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아버지가 내 안에 있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10:38)는 말씀처럼, 믿음은 “내가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나는 예수님의 차원으로 옮겨집니다. 육신을 입고 살고 있지만 이미 영원한 생명이 주어진 것입니다. 이 땅에 살고 있지만 이미 하나님 나라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산 것이고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는 것입니다. 육신적인 죽음은 예수님 안에서 얻는 영원한 생명을 해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생명의 빛에서 보면 육신적인 죽음은 잠과 같다 할 수 있습니다.

3 thoughts on “요한복음 11장 1-44절: 부활과 생명

  1. 저희들의 가정과 교회가 베다니 같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죽었던 영혼이 부활과 생명이신 주님을 그리스도 이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고백하고 영생을 얻고 주님의 영광을 보는 거룩한 성전이 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웃과 함께 무덤의 돌 문을 여는 순종하는 주님의 일꾼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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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시간을 초월하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그 광대하신 분이 우리의 슬픔에도 같이 아파하시니. 세속적인 제 마음은 이해하기 어려우면서도 황송하게도 생각됩니다.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신다는 그 말씀에. 우리의 하늘 아버지 아들딸의 본모습에 맞추어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주님 포도나무가지 되기를 원하니. 마르다처럼 마리아처럼 슬퍼서 서러워서 우는 이들의 기도를 들어주세요.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시고. 주님의 뜻이라면 그들의 삶에 영과 육신의 은혜 주셔서 아버지 영광 드러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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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죽음은 사람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 넘어설 수 없는 산이요,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손님입니다. 공평한 것으로 말하자면 죽음처럼 공평한 것이 없지만 죽음과 만나는 때는 사람마다 다 달라서 딱 맞는 때에 죽음이 찾아왔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많은 기적 중에서 나사로를 살리신 일은 예수님과 가까운 사람에게 일어난 일이라 그런지 더욱 특별해보입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나 마르다와 마리아의 말을 들어보면 나사로는 병이 들어 앓고 있었지만 꼭 죽을 병은 아니었던 것 같이 보입니다. 가까운 곳에 예수님이 계셨기에 두 자매는 예수님이 곧 오실 줄로 믿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시기만 하면 나사로는 툭툭 털고 병상에서 일어날 줄로 믿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마치 나사로가 죽을 때까지 일부러 기다리시는 것처럼 이틀을 더 지체하다 베다니로 가십니다. 잠들었다와 죽었다는 표현을 번갈아 쓰시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우셨다는 유명한 귀절 또한 묵상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나사로네 식구들을 향한 연민과 친한 친구의 아픔 등 사람의 보편적인 감정이 예수님에게도 흐르고 있음을 보게 합니다. 깊은 공감과 공명이 음악처럼 울려나는 장면입니다. “나사로야 나오너라!” 이 한마디가 죽음을 깨뜨립니다. 잠들었던 나사로를 깨우는 소리이자 무덤 속에 꽉 들어찬 죽음의 사슬이 깨지는 소리입니다. 예수님이 눈물로 부른 노래가 무덤까지 흘러들어가 나사로의 귀에 들렸을 거라는 상상도 하게 됩니다. 큰 소리로 말씀하시기 전에 그분의 눈물부터 나사로 얼굴을 덮은 천을 적시는 것을 상상해 봅니다. 예수님이 오늘 행하시는 기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는 일입니다. 믿으면 보게 되는 하나님의 영광은 보이는 것 너머, 들리는 것 너머에서 옵니다. 하나님께 올리는 예수님의 기도에 주목합니다. “지금까지 제 말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기도는 제가 어제도 한 기도였습니다. 우리에게 응답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도…우리의 눈물과 하나님의 응답이 만나 일어나는 기적…믿음으로 이 기적을 매일 감당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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