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3장 1-20절: 종으로 오신 예수님

해설:

유월절이 다가오자 예수께서는 당신의 때가 가까이 온 것을 아시고 제자들과 마지막 식사를 나눕니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나눈 마지막 식사를 두고 요한은 예수께서 “세상에 있는 자기의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1절)고 말합니다. 여기서 “끝까지”는 “마지막 순간까지”라는 뜻일 수도 있고, “사랑을 남김없이”라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두 가지 뜻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식사를 나누시던 중에 예수님은 “일어나서,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셨”(4절)고 “대야에 물을 담아다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른 수건으로 닦아 주셨”(5절)습니다. 그것은 당시에 노예가 주인에게 혹은 주인의 손님에게 하던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 앞에서 당신 자신을 낮추어 종의 역할을 떠맡은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고 오신 사건을 상징하는 것이며 또한 십자가에서 당신의 전부를 내주신 사건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자기 차례가 오자 그럴 수 없다고 사양합니다. 예수님은 “내가 하는 일을 지금은 네가 알지 못하나, 나중에는 알게 될 것이다”(7절)라고 답하시며 당신의 섬김을 받아 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베드로가 다시 만류하자 예수님은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너는 나와 상관이 없다”(8절)고 답하십니다. 그것은 십자가에서 드려질 당신의 희생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주님, 내 발뿐만이 아니라, 손과 머리까지도 씻겨 주십시오”(9절)라고 청합니다. 베드로는, 예수께서 몸 씻는 것을 두고 말씀하시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미 목욕한 사람은 온 몸이 깨끗하니, 발 밖에는 더 씻을 필요가 없다. 너희는 깨끗하다”(10절)고 답하십니다. 

제자들의 발을 다 씻겨 주신 다음 예수님은 다시 식탁에 앉으셔서 당신이 행한 것처럼 서로 낮아져서 섬기라고 부탁하십니다(12-17절). 예수님의 섬김과 희생은 우선적으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한 것이지만, 또한 그것은 우리가 따르고 배워야 할 삶의 모델이기도 합니다. 예수께서 선생의 자리에서 내려와 종의 자리에 섰다면, 그분을 주님으로 섬기는 사람들은 더 더욱 그래야만 합니다. 

예수님은 또한 당신을 팔아 넘겨 죽게 할 가룟 유다에 대해서도 말씀하십니다. 그분은 이미 가룟 유다의 마음 안에서 일어나고 있던 일 즉 “악마가 이미 시몬 가룟의 아들 유다의 마음 속에 예수를 팔아 넘길 생각을 불어넣었다”(2절)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분은 그것이 시편의 예언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18절) 당신의 예언대로 이루어지면 ‘내가 곧 나’임을 알라(19절)고 하십니다. ‘내가 곧 나’는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에 사람의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꿰뚫어 보십니다. 

묵상:

예수님은 당신께서 이루신 그리고 이루실 구원의 사역을 한 편의 모노 드라마를 통해 제자들에게 가르치십니다. 겉옷을 벗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고 제자들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은 그분의 성육신 사건을 상징합니다. 태초에 하나님과 같이 계셨고 아버지 하나님의 품 속에 계셨던 그분이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그것은 또한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완성하실 구원 사역을 상징합니다. 만왕의 왕께서 죄인으로 십자가에 달려 피흘리실 것입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초대 교회에서는 이렇게 예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빌 2:6-8)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주어진 구원의 은혜를 받아 들여야 합니다. 알고 보면, 그것은 너무도 송구스러운 일입니다. 우리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의 아드님의 그 고귀한 희생을 아무 대가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는 말입니까? 베드로가 자신의 발을 씻으시려는 예수님께 절대 그럴 수 없다고 말한 것은 너무도 송구스러웠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은혜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우리는 예수님과 아무 상관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립니다. 십자가 앞에 머리 숙여 두렵고 떨림으로 그 은혜를 받아들일 때, 그분의 생명은 우리 안에서 역사합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분처럼 자신을 낮추고 비우고 섬기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4 thoughts on “요한복음 13장 1-20절: 종으로 오신 예수님

  1. 보혈로 저희들을 살려 주시고 생명수로 깨끗이 씻어주신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성령의 세례가 갱신이되어 항상 깨끗하게되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의 마음을 품고 낮아지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웃과함께 점 점 더
    주님을 닮아가고 가까이에서 주님과 동행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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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 같이 요즘에도 가끔 교회에서 세족식 행사를 합니다. 서로의 발을 씻겨주는 모습이 각본처럼 진행되는 행사같을지라도 은혜스러운 것은 주님께서 친히 행하셨던 순수한 섬김의 모습을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나도 오래 전 교사로서 학생들의 발을 씻겼던 기억이 있습니다. 순수했던 학생들이 울며 껴안고 회개하며 사랑을 나누었던 세족식은 내가 약할 때 강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케 했던 복된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는 왜 갑자기 제자들의 발을 씻으셨을까요. 발을 씻기지 않아도 얼마든지 다른 방법으로 섬김의 모습을 보일 수 있었을 터인데 말입니다. 14절에 남들의 발을 씻을 정도로 낮아져서 섬기는 본을 보이기 원했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그 행동을 경험했던 제자들은 그들의 일평생 삶가운데 가난하고 병들고 더럽고 추한 자들을 볼 때마다 자신의 손으로 만질 수 있었고 포옹할 수 있었으며 진솔한 섬김을 이룰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문둥병자들이 사는 곳에서 선교하시는 분의 간증을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얼굴이 몹시 상해있고 몸에서 진물이 나는 사람들이 일부러 선교사를 찾아와서 테스트를 하곤 한다 합니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이 필요했던 것이겠지요. 그들의 모습이 두렵고 혐오스러워 도저히 가까이 갈 수 없었을 때 꿈에 주님께서 문둥병자의 모습으로 자신에게 나타나는 것을 보고 눈물로 회개했다고 합니다. 그 후로 그들을 안아주고 허물을 닦아주는 사랑의 사람으로 변화되었다는 간증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모습은 문둥병자를 만져주시고 고치셨던 똑같은 주님의 모습이었습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 벗겨진 상태로 돌을 맞기 직전에 있었던 여인에게도, 38년 된 병자로 베데스다 연못가에 버림받았던 병자에게도, 남들의 눈을 피해 더운 낮 시간에 우물로 나왔던 수가성 여인에게도 주님은 늘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무엇이 주님으로 제자들의 발을 씻게 했을까요. 무엇이 주님으로 간음한 여인을 회복시켜 주셨고 외로운 병자를 찾게 하셨고 버려진 여인을 위로할 수 있었을까요. 진정한 섬김은 진실된 사랑의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신 주님의 사랑은 가식적인 사랑도 아니었고 거짓된 사랑도 아니었습니다.

    사랑이 변화시키는 것 같습니다. 성경을 창세기 부터 계시록까지 꽤뚫어도 신학적 천재라는 평가를 받아도 주님의 사랑 없이는 한 사람도 변화시킬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섬기는 자의 삶은 결코 쉽지 않은 삶인 것 같습니다. 그것도 세상적으로 가치를 찾을 수 없는 자를 섬기는 것이 어떻게 쉬울 수 있을까요. 주님께서 나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시는 것일까요. 주님께서 요구하시는 섬김이 나의 삶을 통해 온전히 나타나기 원한다면 주님의 사랑에 빠져야 할 것 같습니다. 주님과의 사랑은 특별한 힘을 주는 것 같습니다. 내가 지키지 못했던 말씀을 지키는 것이 너무나 즐겁고 내가 좋아했던 세상적인 것들에 더 이상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불쌍한 사람을 보면 마음이 아프고 어려움을 당한 분들을 보면 가슴이 무너질 것 같은 삶은 내가 주인 된 삶에서는 이룰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주님께서는 비록 그 쓴잔을 옮겨달라는 기도를 드렸지만 십자가 보다 강했던 주님의 사랑이 다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게 하시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어떻게 해야 이런 주님의 사랑을 나도 베풀며 살 수 있을까요. 주님께서 나의 진정한 주인 되실 때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직도 나의 생각이 주님의 생각을 앞지를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나의 연약한 모습을 주님께 호소하며 주님 뜻에 나의 생각을 온전히 복종시키는 완전한 순종의 삶이 되기를 이아침 주님께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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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예수님이 제자를 가르치신 방법이 인상깊습니다. 서로를 섬기라 말로만 하신게 아니라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제자들이 레슨과 깨우침을 받을 수 있었던 건 아무래도 평소 예수님의 섬김을 직접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저도 공부를 하면서 많은 선생님들을 만났습니다. 저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신 분들은 교실밖에서 저에게 시간과 정성을 주셨습니다. 저도 그런 섬김을 마음에 품고 삶에서 드러나기를 바랍니다. 사회가 바라는 그런 굴레안에서만 섬기면서 만족하지 않기를.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이 제 섬김에 원천이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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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예수께서 제자의 발을 씻기신 일은 상징으로도, 드러나는 모습 그대로도 특이한 일입니다. 발은 몸에서 가장 아래에 있습니다. 땅의 흙과 먼지를 고스란히 받는 부분입니다. 눕기 전까지는 작은 두 발이 몸을 다 지탱해 줍니다. 발이 튼튼해야 사람답게 설 수 있고 가고 싶은 곳으로 걸어갈 수 있습니다. 이런 발을 예수님이 씻겨 주십니다. 밖에 나갔다 집으로 돌아오면 물동이에서 물을 떠 손을 씻었고, 종을 두고 살 형편이 되면 종이 두 발을 잘 씻긴 뒤에 수건으로 닦아주어 상쾌하게 만들어 주는 생활문화를 상상하며 본문을 읽습니다. 제자들은 다 자기 손으로 자기 발을 씻으며 살았을 것입니다. 발을 씻음으로 고된 하루가 끝나고 휴식을 취하는 것을 연상할 수도 있습니다. 이 시점으로부터 먼 훗날 예수님의 기쁜 소식을 다 전한 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영광의 휴식 안으로 들어가는 상징으로 보면 마리아가 향유를 붓고 머리카락으로 예수님 발을 닦으며 장례를 준비하는 상징과 통합니다. 예수님이 발을 씻겨 주시며 “서로 발을 씻겨주어야 한다 (14절)”고 명하시는 것을 서로 돕고 격려하고 사랑하며 살라는 뜻으로 보면 행동으로 보이는 믿음, 믿는 사람들의 사귐과 사역을 말씀하시는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각자 자기 몫의 일을 열심히 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서로 인정하고 격려하고 존경하며 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한 종교의 교주로서 우리 앞에 서계신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앞에 무릎을 꿇고 우리의 발을 씻어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 형제, 친구, 스승, 종…이 되어 주십니다. 예수님을 온전히 카피하며 살 수는 없지만 흉내라도 낸다면 영광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절절히 느끼고 아낌없이 나누는, 끝까지 예수님을 사랑하는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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