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6장: 세상을 이기는 믿음

해설:

예수님은 당신이 떠나갈 것에 대해 제자들을 준비시키기 위해 말씀을 계속 이어 가십니다. 육신을 입고 오셨던 그분은 이제 곧 떠나가십니다. 더 이상 그분을 육신적으로 만날 수가 없습니다(5절). 뿐만 아니라, 그분을 미워하고 박해했던 세상은 믿는 사람들을 동일하게 대접할 것입니다. 그러한 일들이 일어났을 때 그들이 슬퍼하거나(6절) 당황하지 않도록 그리고 그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지킬 수 있도록 준비시키십니다. 이 대목에서 예수님은 다시 한 번 “보혜사”(7절)에 대해 강조하십니다. 당신이 떠나가시면 성령께서 오셔서 믿는 사람들의 대변자요 변호자요 위로자로 일하실 것입니다. 그렇기에 어찌 보면 예수님이 떠나가시는 것이 더 유익한 일입니다(7절). 

성령께서 오시면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세상의 잘못을 깨우치실 것”(8절)입니다. 구원을 얻기 위해 깨달아야 할 진실은 이 세 단어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죄”에 물들어 있고, 그로 인해 하나님의 “의”에 이르지 못하고, 그 결과로 인해 “심판”에 직면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세 가지 영적 진실을 부인하고 죄 속에 머물러 살기를 고집합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이 진실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그 깨달음을 받아들이고 회개하면 성령께서 그 사람 안에 내주하여 거듭나게 하십니다. 그래서 성령은 또한 “진리의 영”(13절)이십니다. 그분과 함께 하는 것은 곧 예수님과 함께 하는 것이요, 그것은 또한 성부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믿는 자의 삶 속에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하나가 되어 일하십니다(15절).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것과 성령을 통하여 다시 오실 것을 두고 “조금 있으면 너희는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볼 것이다”(16절)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은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들이 그 모든 것을 이해한 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약속대로 성령을 받은 후의 일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을 보고 그들은 마치 해산하는 여인처럼 고통스러워하겠지만, 그 여인이 아기를 안고 기뻐하듯 그들도 성령의 선물을 받을 때 기쁨을 넘치게 받을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그 때가 되면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23-24절). 그 날이 오면 하나님에 대해 더 이상 비유로 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말하게 될 것입니다(25절). 

제자들은 이 말씀에 “보십시오. 이제 밝히어 말씀하여 주시고, 비유로 말씀하지 않으시니 …… 이것으로 우리는 선생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것을 믿습니다”(29-30절)라고 대답합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그 날”이 이미 온 것으로 착각한 것입니다. 그들은 아직 예수님이 누구신지 제대로 알지 못했고, 그랬기에 그분께 대한 그들의 믿음은 불완전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들려 올려지는 것을 보아야 했고, 또한 그분이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는 것을 보아야 했으며, 보혜사 성령의 선물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런 다음에야 그들은 온전한 믿음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보아라, 너희가 나를 혼자 버려 두고, 제각기 자기 집으로 흩어져 갈 때가 올 것이다”(31-32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그 때가 벌써 왔다”(32절)고 말씀하십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을 때, 십자가에서 영광을 받으실 때가 가까이 왔다는 뜻입니다. 이제 곧 모든 제자들이 그분을 버리고 달아나 그분은 혼자 남게 될 것이며 홀로 모든 고난을 겪으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런데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니, 나는 혼자 있는 것이 아니다”(32절)라고 말씀하십니다. 진정한 평화는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말한 것은,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환난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33절)고 덧붙이십니다. 겉으로 보면 예수님은 세상에 지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처형 당하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분은 세상을 이겼다고 하십니다. 세상이 가하는 미움과 박해와 순교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승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결판 나는 것입니다.

묵상:

믿는 사람들 중에는 “예수님 시대에 태어나 그분을 직접 보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때 태어났더라면 지금보다 더 잘 믿었을 것처럼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상은 그 반대입니다.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보다 우리가 훨씬 더 잘 믿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제대로 알려면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분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는 것 그리고 사흘만에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 나셨다는 것을 알고 믿어야 합니다. 그뿐 아니라 그분이 약속하신 성령의 선물을 받아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게 되고, 그분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를 알게 됩니다. 제자들도 결국 이 믿음에 이르렀기에 마침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았습니다. 예수께서 세상을 이긴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 때문이었듯이, 제자들도 그런 믿음에 이르러 세상을 이겼던 것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의 하나님이 서로 손을 잡고 영원한 춤을 추고 계십니다. 믿음이란 세 분이 손잡고 추는 춤 가운데 들어가 그 춤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 손에 잡혀 있는지 그리고 내가 누구 손을 잡고 있는지를 알면 두려움이 없고 근심이 없습니다. 인생 여정에서 당하는 어떤 환난도 믿음의 뿌리까지 흔들지 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죽음도 유익이기 때문입니다. 환난의 날에 우리를 지켜 줄 것은 바로 이 믿음입니다. 

2 thoughts on “요한복음 16장: 세상을 이기는 믿음

  1.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으로, 전지전능 하신 아버지의 거룩함과 사랑을
    깨닫게 도와주신 성령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드립니다.
    험하고 거친 세상에서 이웃과함께 기쁨과 평화를 만끽하는 삶을 세상에
    보여주는 부활의 증인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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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예수님 하시는 말씀을 제자들은 이해를 잘 못합니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아서 입니다. 헛되게 시간을 보내는 일이 허다한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영화라면 필요하지 않은 사람, 사건, 장소…다 없애고 깔끔하고 보기좋게 다듬은 영화로 끝나는 인생은 단 한 편도 없을 것입니다. 셀 수 없는 기다림, 나태함, 오해, 욕심…의미도 유익도 없어 보이는 시간의 낭비이거나 혹은 반대로 끝도 모를 갈증, 허기, 조바심, 분주함…등이 나를 사로잡습니다. 믿음은 이런 혼란스러운 인생길을 비춰주는 별인지도 모릅니다. 동방박사를 비춰준 별일 수도, 어린왕자의 장미가 사는 별일 수도 있습니다. 외계인 ET가 돌아가고 싶어한 HOME 일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고 하십니다. 슬퍼하지도 말고, 무서워하지도 말라십니다. 구하라고 하십니다. 넘치는 기쁨이 있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담대하라고 하십니다. 나의 언어로 예수님의 당부를 바꿔봅니다. 예수님이성령으로 지켜주시니 두려울 것 없다고 말해봅니다. 예수님이 사랑하시니 더 구할 것이 없다고 말해봅니다. 낭비하는 인생 아니라고 말해봅니다. 하나님의 때를 믿으라고 말해봅니다. 믿습니다 주여. 믿음을 주소서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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