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7장: 영원한 대제사장의 기도

해설:

마지막 만찬 자리에서 이 모든 말씀을 마치신 다음,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를 올리십니다. 이것을 ‘대제사장적 기도’라고 부릅니다. 영원한 대제사장으로서 예수님께서 드린 기도라는 뜻입니다.

먼저, 아버지 하나님에 대해 그리고 당신 자신에 대해 기도하십니다(1-5절).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을 영광 받는 것으로 여기셨습니다. 그분은 그 일을 완수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해 달라고 하십니다(1절). 그래야만 모든 사람을 영생으로 인도하려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영생은 곧 “오직 한 분이신 참 하나님을 알고, 또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3절)입니다. 히브리어의 “알다”는 인격적인 관계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영생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의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것은 죽고 나서 완성되지만 지금 이곳에서부터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영생의 길을 여시기 위해 예수님은 십자가에 들려 올려져야 했습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십니다(6-19절). 그들은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신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아버지 하나님을 보여 주었고 또한 아버지의 말씀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들은 그 말씀을 듣고 지켰으며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은 그들을 떠나 가야 합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께 제자들을 지켜 달라고 기도합니다. 세상이 그분을 미워한 것처럼 제자들도 미워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주님이신 예수님처럼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면 세상은 그들을 미워하고 배척하고 제거하려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세상을 등지고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내가 아버지께 비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 가시는 것이 아니라, 악한 자에게서 그들을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15절)라고 기도하십니다. 여기서 “악한 자”는 사탄을 의미합니다. 사탄은 늘 믿는 이들을 넘어뜨릴 기회를 찾습니다. 

그 세상에서 제자들은 도피할 것이 아니라 더 깊숙이 침투해 들어가야 합니다. 세상 안에 침투해 들어간 제자들은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진리로 이미 거룩해졌기 때문입니다. “거룩”(17절)을 의미하는 히브리어는 “구별됨” 혹은 “차별성”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알고 그 진리를 따라 사는 제자들은 이 세상에 있지만 세상과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것은 세상의 미움과 박해와 공격을 자초하는 일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그들을 지켜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십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제자들로 인해 믿게 될 후대의 신자들을 위해 기도하십니다(20-26절). 미래의 신자들을 생각하시며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과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어서 우리 안에 있게 하여 주십시오”(21절)라고 기도하십니다. 믿음의 본질은 관계입니다. 인격적으로 서로 융화되어 일심동체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믿음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는 가장 완전한 모델입니다. 믿는 이들이 삼위의 하나님과 하나가 될 때 세상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비로소 알게 될 것입니다. 그분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입니다. 삼위의 하나님과 하나 되어 살아갈 때 믿는 이들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묵상:

한 사람의 기도는 그 사람의 내면을 보여 줍니다. 무엇을 기도하느냐가 그 사람의 진심을 보여 줍니다. 특히, 중요한 순간에 드리는 기도는 그 사람의 진면목을 보여 줍니다. 예수께서 마지막 만찬의 자리에서 드린 기도 역시 그분의 뜨거운 마음을 보여 줍니다. 

먼저, 그분은 당신 자신에 대해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만을 구하십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영생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당신이 온전히 쓰여지기를 기도하신 것입니다. 또한 제자들을 위해서는 세상 안에서 세상과 다르게 살아가기를 기도하십니다. 그들은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람들이고 진리에 속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을 통해 나타나게 될 후대의 신자들을 위해서는 인격적 믿음을 구하십니다. 그런 믿음만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고 또한 그 사랑을 세상에 보여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을 향한 기도는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제자들을 위한 기도 역시 이루어졌습니다. 그랬기에 오늘 우리가 믿음을 이어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위한 기도가 이루어져야 할 차례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의 하나님이 온전히 하나이듯, 우리도 삼위의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살아가는 것이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고 또한 그 사랑으로 세상에 사랑을 전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이 세상에서 세상과 달리 사는 방법입니다. 이 기도는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에게 드린 기도입니다. 그렇기에 틀림없이 응답되는 기도입니다. 그분 안에 머물러 있기만 한다면 이 기도가 우리에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4 thoughts on “요한복음 17장: 영원한 대제사장의 기도

  1. 저는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합니다. 성경을 통해 그분이 어느분이신 읽어봤고. 그분이 인간의 몸으로 어떻게 살으셨고 죽으셨고 부활했는지를 배웠습니다. 마음이 움직여 기도하고 찬양하기도 했지만 정작 하나님 아버지와 사귀었던 시간은 제 지난 인생의 지극히 작은 시간 같습니다. 그나마 간간히 느낀 그 사랑에 간혹 간절히 기도할 수 있음을 감사합니다.

    제 육신의 부모님과 거리감이 있는 것도 비슷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멀리 떨어져서 그랬는지 일심동체를 느낄 수 없었습니다. 그 부족함이 보이지 않는 상처가 되어 제가 하나님을 데할때 거리가 있고 허하게 느끼는게 아닌가 생각듭니다. 저뿐 아니라 제 부모님도 마찬가지시겠죠.

    하루하루 하나님과 사귐을 원합니다. 그사귐이 두터워 지기를 바랍니다. 아니 두터워짐은 하나님이 하실테니 다만 지속되도록 제 마음 다스려 주소서. 그 사귐을 통해 육신의 사귐도 또한 깊어지고. 그 안에서 평안과 기쁨이 흐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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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요한은 예수님이 처음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하나님과 같은 분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이제 하나님께로 돌아가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온 천하에 드러내시고 그 영광에 참여하는, 그 영광을 믿고 받아 들이는 모든 이에게 영생이 주어졌음을 선포하십니다. 나는 이 영생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귐의 시간이 시작된 순간부터 하나님의 영생의 시간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영생의 개념은 아직도 어렵습니다. 영원한 생명이라는 뜻으로 생각하면 육신의 몸이 감당하게 될 죽음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보느냐는 신학적인 여러 갈래와도 연결되어 있는 개념입니다. 영생을 영적인 생명이라는 뜻으로 생각하면 믿음 소망 사랑이 알맹이가 되는 인생, 인간의 불완전한 진선미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 안에서 완전하게 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눈이 멀어 못보다가 예수님을 만나 눈이 뜨여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영생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가나의 혼인잔치 기적도, 수가 마을 우물가에 물 길러 나온 여인 이야기도 영생의 한 예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일은 “죽지 않는다”는 의미의 영생과 영적인 생명력을 하나로 이어서 보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이야기며 동시에 믿음 안에서 얻는 온전한 자유의 상징으로 나사로의 소생을 이해합니다. 영생에 대해 좀 더 길게 묵상하는 하루가 되기를 원합니다. 성령의 지혜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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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은 하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하시며 예수님 안에 아버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하신 말씀은 믿음을 통하여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한 자들은 주님과 하나됨은 물론 이거니와 예수님 안에 계시는 하나님과 하나됨을 말씀해 주심으로 받아 드립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구원의 복된 소식이 나만의 것이 아닌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은 나의 능력으로 얻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죄로인해 죽을 수 밖에 없는 자들에게 이 복된 소식을 전한다는 것은 성도가 할 수 있는 진정한 사랑의 표현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일 4:9~10)

    주님께서는 십자가의 희생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입증해 주셨습니다. 사랑의 본질되시는 하나님께서 아담을 만드시기 이전에 존재했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으로 만들어진 인간에게 보여주실 하나님의 사랑은 이미 희생을 전제로한 사랑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인간의 사랑은 제한적인 것 같습니다. 이기적인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주님께서 내 안에 계신다는 것은 그분의 사랑도 함께 존재함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제한적인 내가 주님의 통치에서 벗어난다면 제한적인 사랑과 이기적인 사랑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고는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살 수 없다는 말씀도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나의 희생을 통하여 내 안에 그리스도가 나타나게 되고 그리스도가 나타날 때에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이 표현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프리카에 이런 속담이 있다고 합니다.

    “If you want to go fast, go alone. But if you want to go far, go together”
    혼자 가면 빨리 갈 수는 있겠지만 멀리 가기를 원한다면 함께 가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사랑은 홀로 간직하는 사랑도 아니고 홀로 이룰 수 있는 사랑도 아닌 것 같습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그 계명은 십자가의 희생을 치르신 주님께서 우리 안에 계실 때 온전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이아침 주님의 은혜를 간구합니다.

    외울말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 2:20)

    I have been crucified with Christ and I no longer live, but Christ lives in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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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십자가를 앞에두고 저희들을 위해 마지막 기도를 하신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 아버지와 예수님의 사랑을 더 많이 알도록 주님의 영이 도와주십시오.
    가정에서 교회에서 직장에서 주님을 중심으로 하나되기를 원합니다.
    말씀을 깨닫고 변화되고 실천하는 믿음을 이웃과함께 세상에 알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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