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8장 1-18절: 사명으로 사는 사람의 기세

해설: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마치신 다음 기드론 골짜기를 거쳐서 맞은편 올리브 산으로 가십니다. 다른 복음서에 보면 그곳에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따로 두고 한적한 곳에 가셔서 치열하게 기도하셨습니다. 그분이 십자가에 달리는 것은 당신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니라 인류의 죄값을 대신 담당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분이 십자가에서 감당해야 했던 고통의 분량은 인류 전체의 죄값과 같았다는 뜻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나의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주십시오”(마 26:39)라고 기도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끝내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하면서 당신의 소명을 받아 들이셨습니다. 

기도가 끝날 즈음 가룟 유다가 로마 군병과 성전 경비병들을 데리고 예수님을 체포하러 찾아 옵니다. 예수께서는 “자기에게 닥쳐올 일을 모두 아시고”(4절) 계셨기에 피하지 않으십니다. 그들이 나사렛 사람 예수를 찾는다고 하자 그분은 “내가 그 사람이다”(5절) 하고 나섭니다. 군사들이 그 기세에 질려 뒷걸음 치다가 넘어집니다. 예수님은 재차 그들이 찾는 사람이 자신이라고 말하면서 다른 사람들은 그냥 보내 주라고 요청합니다(8절). 그 때 베드로가 가지고 있던 칼을 휘둘렀고 대제사장의 종인 말고의 귀가 잘려 나갑니다(10절). 예수님은 베드로의 행동을 제지 하시면서 “그 칼을 칼집에 꽂아라.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신 이 잔을, 내가 어찌 마시지 않겠느냐?”(11절)고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순순히 자신을 내어 주자 병사들은 그분을 포박합니다. 여기서 저자는 4절에서처럼 “로마 군대 병정들과 그 부대장과 유대 사람들의 성전 경비병들”(12절)이라고 그들의 정체를 밝힙니다. 예수님의 죽음에 유대인들과 로마인들이 함께 가담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군병들은 예수님을 포박하여 대제사장 관저로 데려 갑니다. 당시 대제사장은 가야바였는데, 그의 장인 안나스가 배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안나스는 전임 대제사장으로서 사위인 가야바에게 대제사장직을 세습시킨 것입니다. 실권자인 안나스가 한 밤 중에 예수를 처리하기 위해 비공식 모임을 소집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체포 당할 때 어둠 속으로 사라졌던 제자들 중에 베드로와 다른 제자 한 사람(이 복음서를 쓴 요한이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이 몰래 대제사장 관저까지 따라 옵니다. 그 “다른 제자”는 대제사장과 아는 사이였기에 베드로를 데리고 관저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 때 문지기 하녀가 베드로를 알아 봅니다만, 베드로는 자신의 정체를 부인합니다(17절). 베드로는 어둠 속에 숨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불을 쬐면서 사태를 지켜 보고 있었습니다.

묵상:

예수님은 자신의 사명을 발견하고 그것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의 전형적인 태도를 보여 주십니다. 그분은 당신이 감당해 내야 할 무한대의 고통을 아시면서도 그것이 하나님의 사명이라고 믿었기에 십자가를 향해 걸어 나가십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부름을 믿기에 아무 것도 장애가 될 수 없었습니다. 그분의 목적은 어떻게든 살아남고 어떻게든 누리며 살자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하나님의 뜻을 이루자는 데 있었습니다. 그랬기에 “이 세상의 통치자가 가까이 오고 있다”고 하시면서 “그는 나를 어떻게 할 아무런 권한이 없다”(14:30)라고 말했고, 제자들에게는 “너희는 세상에서 환난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16:3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잡으러 오는 병사들을 향해 “내가 그 사람이다”라고 말하면서 자신을 내어 주십니다. 그 기세에 병사들이 질릴 정도였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그분 안에서 사명을 발견한 사람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그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지금 하려는 일이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일이라고 믿기 때문에 그 무엇도 괘념 하지 않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스리고 계심을 믿기에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완수하기 위해 전진할 뿐입니다. 

이런 확신과 이런 기세로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영원하고 절대적인 하나님,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이런 기세로 겸손하게 그러나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2 thoughts on “요한복음 18장 1-18절: 사명으로 사는 사람의 기세

  1. 오늘 본문에서 “만약 나라면…”하는 상황을 두 가지로 놓고 묵상해봅니다. 예수님처럼 죄가 없는데도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하지만 “만약 나라면…”상상해보니 나는 분명 억울함에 사무쳐 정신을 잃었을 것입니다. “공권력에 무고하게 희생되는 삶”이 더이상 나오지 않도록 검찰을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에 몇 번이라도 촛불을 들어야 할 것도 같습니다. 물론 이것은 머리속에 드는 생각으로만 하는 소리일 뿐, 실제로 그 자리에 있지도 않은 사람이 무슨 판단을 하고, 어느 편이 맞다는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종교계까지 나서서 불을 붙이는 판에….. 또 한 가지 묵상은 베드로의 자리에 나를 놓고 해봅니다. 떳떳하게 나설 수 없는 상황, 너가 생각하는 그 사람이 나 맞다고 확인해주면 감당하기에 복잡한 일이 일어날테니 눈도 마주치지 않고 입도 열지 않고 가만히 숨죽이고 있어야 하는 때가 있습니다. 소시민으로 조용히 살기 위해 의견이나 신분을 드러내지 않는 선택을 하는 때는 의외로 많습니다. 베드로를 예수님의 제자로만 보면 그의 행동은 비겁해 보이지만 사회의 주변인으로 “모난 돌이 정 맞는” 일을 피하며 사는 한 개인으로 보면 나 역시 그보다 나을 것이 없습니다. 정체성의 위기는 사춘기나 청년의 때만 지나면 없어지는 성장통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 예수님의 친구라는 정체성은 차라리 성장판에 가깝습니다. 쓰면 쓸수록 단단해지는 근육이라는게 맞습니다. 예수님은 “그가 나다”라고 답하시고 베드로는 “나는 그가 아니다”라고 답합니다. 만약 나라면 어떻게 답을 했을까…나는 매일 누구로 살고 있는가…나는 내가 맞나…

    Like

  2. 본문 말씀을 보며 교회세습에 관해 생각했습니다. 또한 권력을 잡기위해 교회와 정치인들의 의기투합이 생각났습니다. 그런 모습이 옛날이나 지금이나 계속되는게 인간의 죄성은 교회조차 탐욕의 도구로 사용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죄성은 예수를 따르는 베드로조차도 세상의 권력앞에서 숨게 만듭니다. 움츠려들고 벌벌 떨며 예수님과 동고동락하며 얻은 믿음이 흔들리게 됩니다. 그런 베드로의 두려움은 제 삶에도 곧잘 보입니다. 나의 이미지가 어떻게 보일까하는 걱정에. 나에게 어느 불이익이 생길까하는 고민에 예수님을 잊을 때가 왕왕 있습니다.

    제 안에 주님 오셔서. 그러므로 저한테 주신 힘으로 저보다 약한이들에게 함부로하지 않도록. 그리고 용기 주셔서 불의를 마주하게 하기를 기도합니다.

    Like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