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가서 5장: 낮은 곳으로 임하신 하나님

해설:

바빌론에 의해 예루살렘이 포위될 것에 대해 예언하는 1절은 내용상 4장 13절에 속한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다음 미가는 이스라엘과 유다를 구원하실 분에 대해 예언을 합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2절)는 “베들레헴 곧 에브라다야”라고 번역하는 것이 좋습니다. 에브라다 혹은 에브랏은 베들레헴의 옛 지명이었거나 또 다른 이름이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베들레헴은 유다의 마을 중에서 존재감이 가장 낮은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너는 유다의 여러 족속 가운데서 작은 족속”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그 구석진 마을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나올 것입니다.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은 그 구원자가 나타날 때까지 원수들의 손에 잡혀 있을 것입니다(3절). 때가 되어 그 구원자가 나타나면 하나님의 백성을 원수의 손에서 건져내고 “주님께서 주신 능력을 가지고, 그의 하나님이신 주님의 이름이 지닌 그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4절) 그 백성을 다스릴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의 위대함이 땅 끝까지 이를 것”입니다. 그 때에야 백성들은 “평화”를 맛 볼 것입니다(5절). ‘평화’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샬롬’은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삶의 모든 면이 온전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처음 이 예언이 선포되었을 때 사람들은 그 구원자가 바빌론 포로에서 자신들을 해방시킬 위대한 임금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임금은 나타나지 않았고, 그들을 바빌론 포로에서 해방시킨 것은 페르시아의 임금인 고레스였습니다. 그래서 이 예언은 오랫 동안 무시되고 잊혀졌습니다. 

이 예언이 다시 주목을 받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그분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사흘만에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시자 초대 교인들은 그분을 메시아로 믿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 대해 더 알고 싶어서 구약의 예언들을 샅샅이 뒤졌고, 오늘의 본문에서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이라는 예언을 발견했습니다. 그로 인해 이 예언이 유다 백성을 바빌론 포로에서 구해 낼 임금에 대한 예언이 아니라 온 인류를 죄악에서 구원할 메시아에 대한 예언임을 깨달았습니다. 

그제서야 “그의 기원은 아득한 옛날, 태초에까지 거슬러 올리간다”(2절)는 말씀의 의미를 알 수 있었습니다. 요한이 쓴 대로, 그 구원자는 태초에 하나님과 같이 계셨고 하나님이셨던(요 1:1) 그분이십니다. 미가의 예언 그대로 그분의 위대함은 땅 끝까지 이르렀습니다.

묵상: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자주 인간의 기준과 기대를 넘어섭니다. 아니, 인간의 기준과 기대와 반대일 때가 많습니다. 가장 높으신 분이 가장 낮은 곳으로 임하십니다. 전능하신 분이 가장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분의 위대하심에 걸맞게 명성 높은 도시로 오시지 않고 역사에 한 번도 이름을 올리지 못한 무명의 동네로 오셨습니다. 명망 높은 가문에서 나시지 않고 비천한 여인의 몸을 통해 오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손길을 자주 놓칩니다. 하나님이 잘 보이는 곳에는 눈을 돌리기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높은 곳을 바라보고 화려한 곳에 가기를 힘쓰며 지체 높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합니다. 좋은 음식이 있고 흥겨운 유흥이 있는 곳에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 곳에 눈길을 박고는 “왜 하나님이 보이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그런 곳에서도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다만 인간적인 것들이 너무 휘황찬란하게 빛나기에 하나님이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반대로, 인간적인 요소들이 주목을 끌지 않는 곳에서는 하나님의 손길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손길을 보고 그분의 은혜를 입기 원하는 사람이라면 낮은 곳으로, 연약한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빛이 들지 않는 침침한 구석으로 가야 합니다. 새로 태어난 메시아를 보기 위해 예루살렘이 아니라 베들레헴으로 가야 했던 것처럼!

3 thoughts on “미가서 5장: 낮은 곳으로 임하신 하나님

  1. 가장 낮고 척박한 베들레헴에서 한 여인의 몸에서탄생을 통하여 쥬님의 속성을 나타내시며 인류의 구원사업을 이루신 주님을 명상합니다, 로마의 억압에 짓 눌려 절망속에 살아가던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끝내는 세상 모든 종족을 하늘나라로 인도하신 주님을 기억합니다.
    끊임없는 전쟁과 기근 속에서 새로운 삶의 가치에 눈을 뜨게하시고 어떻게 사는 것이 평화의 삶인 가를 손수 보여주시고 가르켜 주신 주님의 재림을 기다립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 모든 것을 벗어 버리고 주님을 따라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 주님을 찬양하려 합니다, 주님 어서 오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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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보이는 부귀영화 명예 권력에 한눈을 팔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의 노예로 변 하지 않게
    인도 하여 주십시오. 보이지 않는 영원한 축복을 보는 영의 마음을 원 합니다.
    작고 보잘것 없지만 깨끗하고 투명해서 아기 예수님이 기꺼이 오시는 마음을 원 합니다.
    별을 보고 이웃과 함께 아기 예수를 찾아 예배와 경배를 들이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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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작년 이맘 때는 헨델의 “메시야”를 연주했는데 올해는 이러저러한 이유 때문에 정기공연을 올리지 못한채 한 해가 갑니다. 대신 어느 다문화교회에서 크리스마스 이브 예배 때 찬양해 달라는 청이 들어와 성탄절 찬송을 몇 곡 준비하고 있습니다. 선교와 문화교류를 목적으로 세워진 합창단인만큼 범교단적으로 모여 연습을 하는데 작년 메시야 공연 이후로 기운이 다 떨어졌는지 공연 후 연습에 모이는 숫자가 확 줄더니 요즘엔 중창단 숫자만큼만 남았습니다. 베들레헴은 성탄절기 찬송과 캐롤에 반짝 등장하는 동네 이름입니다. 작은 마을이지만 명성은 가히 세계적입니다. 아기 예수님이 태어난 곳, “베들레헴의 한 마굿간”으로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계속 이어져 기억됩니다. 인간은 대개 확대지향적입니다. 생명 자체가 성장과 확장의 본능을 갖고 있어서인지 사람은 누구나 커지려고 하고, 크게 되는 것을 원합니다. 누가 유명해지면 그 사람이 태어난 곳, 다닌 학교, 심지어 그의 취향까지도 부풀려집니다.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났지만 나사렛 사람, 갈릴리 출신으로 불립니다. 예수님도 난민이요 이민자라는 말은 요즘에 갑자기 흔해진 소리가 아닙니다. 만인의 왕이신 예수님이 보잘 것 없는 사람들, 흔하디 흔한 평민들과 공통점이 있다는 것 자체가 혁명적입니다. “빵집” “떡집”이 있는 휴게소 같은 마을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아기 예수님을 찬양할 때도 king of kings! lord of lords! 소리높여 찬미할 때도 우리 예수님은 임마누엘 주님이십니다. 누구에게나, 어느 곳에서나, 언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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