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서 5장: 열매 맺는 백성

해설:

하나님께서는 포도원을 비유로 하여 이스라엘과 유다의 죄를 고발하십니다(1-7절). “이스라엘은 만군의 주님의 포도원이고, 유다 백성은 주님께서 심으신 포도나무”(7절)입니다. 포도원과 포도나무를 가꾸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포도원 주인은 정성을 다하여 가꾸고 돌보았는데, 열린 열매는 “들포도”(2절) 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주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제사장 백성으로 가꾸셨는데, 그들은 “선한 일”과 “옳은 일”(7절)의 열매가 아니라 죄악의 열매를 맺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농부가 포도원을 버리듯이 하나님은 그 백성을 심판으로 징계하겠다고 하십니다(5-6절).

이어서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유다 백성의 죄악상을 구체적으로 고발하십니다. 그들은 “홀로 살려고”(8절) 부정하게 재산을 긁어 모읍니다. 또한 그들은 풍요 가운데서 쾌락에 물들어 살고 있습니다(11-12절). 그들은 “거짓으로 끈을 만들어 악을 잡아당기며, 수레의 줄을 당기듯이 죄를 끌어당기는”(18절)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악한 것을 선하다고 하고 선한 것을 악하다고 하는 자들, 어둠을 빛이라고 하고 빛을 어둠이라고 하며, 쓴 것을 달다고 하고 단 것을 쓰다고 하는 자들”(20절)입니다. 그뿐 아니라, 그들은 하나님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가지지 않습니다. 교만이 극에 달한 것입니다(19절). 

총체적이고 뼛속 깊은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은 그들을 이방 민족의 손에 부쳐 심판할 것입니다(25-30절). 여기서 하나님은 심판이 이미 이루어진 사건처럼 과거형으로 묘사하십니다. 사람의 눈에는 미래에 일어날 일이지만 하나님에게는 이미 정해진 일입니다. 그 심판을 통해 유다 백성은 모진 고난을 당하겠지만, “만군의 주님께서는 공평하셔서 높임을 받으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은 의로우셔서 거룩하신 분으로 기름을 받으실 것”(16절)입니다. 그리고 심판에서 살아남은 “어린 양들”(17절)은 그 폐허에서 풀을 뜯을 것입니다.

묵상:

예수께서는 당신을 통해 일어나고 있는 일을 설명하시기 위해 포도원의 비유를 새롭게 만드십니다(마 21:33-46). 이 비유에서 주인은 포도원을 잘 만들어 소작인들에게 주고 멀리 떠납니다. 소작인들은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을 가리킵니다. 열매를 거두어들일 때가 되어 주인은 종을 소작인들에게 보냅니다. 하지만 소작인들은 그 종들을 때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주인이 보낸 종들은 예언자들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 나타난 예언자들은 대부분 배척과 학대와 고난을 당해야 했습니다. 주인은 결국 자신의 아들을 보냅니다. 소작인들이 자신의 아들은 어쩌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소작인들은 그 아들까지 죽이고 맙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유대인 종교 권력자들에게 죽임 당할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다음, 예수님은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게 물으십니다. “포도원 주인이 돌아올 때에, 그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냐?”(40절). 그러자 그들은 “그 악한 자들을 가차없이 죽이고, 제 때에 소출을 바칠 다른 농부들에게 포도원을 맡길 것입니다”(41절)라고 답합니다. 그것이 자신들을 두고 지은 비유인 줄 모르고 스스로를 정죄한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하나님께서는 너희에게서 하나님의 나라를 뺴앗아서, 그 나라의 열매를 맺는 민족에게 주실 것이다”(43절)라고 답하십니다. 이사야를 통해 주신 심판의 예언이 이렇게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 나라의 열매를 맺는 민족”은 교회를 의미합니다. 이제 새로운 선민은 혈통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정해지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에게 요구하셨던 “옳은 일”과 “선한 일”의 열매를 오늘 믿는 자들에게 그리고 교회에게 요구하십니다. 과연 우리는 열매맺는 백성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주인에게 드릴 열매가 우리에게 있습니까? 

3 thoughts on “이사야서 5장: 열매 맺는 백성

  1.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선택받은 이스라엘과 유다가 끝내는 하나님을 실망시키고 하나님을 떠나 홀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보겠다고 이방 신을 섬기며 예언자들을 무시하며 패악에 빠진 그 들을 끝까지 용서하시고 마지막에 예수님을 보내 회개의 기회를 주었건 만 종교지도자들과 율법학자들이 그 마져도 십자가에 못박는 사건을 통해 현재의 우리 종교 지도자들과 믿는 다는 사람들을 떠 올리게 하는 말씀 앞에 서 있습니다.
    주님을 올바로 알고 주님의 제자가 되어 주님을 따르며 그 가르침을 실천해 나가느지 내 자신을 조명해보며 주님이 맡기신 포도원을 성심성의 것 가꾸고 있는지 의구심이 드는 아침 입니다, 이제 성탄 절기를 맞아 주님의 사랑을 함께 공유하며 함께 나누는 계절에 내 주변과 이웃을 따듯한 눈길로 반기는 일로 시작하려 합니다, 주님 곁에서 응원해 주시기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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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과거 이스라엘 민족을 보면서 우리 민족도 돌아봅니다. 옛날 이스라엘 민족처럼 한민족도 옆에 강대국들에 의해 여러 핍박을 받았습니다. 근래에는 일제가 한국의 문화의 뿌리마저 뽑으려 했습니다. 전체주의 사상에 맞서 여러분들이 거리에 나와 독립을 부르짖었습니다. 그들을 이끄는 많은 무리들은 그리스도인 이었고. 미국과 케나다에서 오신 선교사님들의 믿음의 씨앗에서 왔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전쟁 이후에 이룬 한국의 경제성장은 실로 기적이라 생각합니다. 1960년에 최후진국에서 지금은 최선진국인 g7국가들과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경제성장과 함께 한국교회들은 성장했고 지금도 크고 작게 선한 일에 앞서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유함 속에서 많은 그리스도인들도 세상사람들 못지 않게 더 많은 부창출에 몰두하고. 자기존속과 부족주의에 빠져 옆에 이웃을 돌보지 않고 배척하는 모습이 종종 보입니다.

    저도 삶을 돌이켜보면 정도의 차이이지 풍요안에서 자기존속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어찌보면 저 개인의 안녕에 몰두하는 밀레니얼의 모습은 집단의 안녕을 쫓던 부모님 세대의 모습보다 더 좋자 않을 수 있습니다.

    오늘 옛선교사들을 기억하기를 원합니다. 낯설고 열악한 먼 이국땅에서 자신의 신분과 안녕을 내려놓고 섬겼던 분들을 기억합니다.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의 가족까지 데리고. 어느 분들은 풍토병으로 자신의 아들 딸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냈습니다. 어느 분들은 전체주의의 어둠을 학교에서 거리에서 교회에서 맞서싸웠습니다. 그들의 희생과 열매맺음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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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New normal 이라는 단어가 생겼습니다. 교회 세습제, 귀한 헌금으로
    복음 증거 보다 대형교회 짖기는것이 normal이된 시대가 됐습니다.
    죄를 깨닫지못하고 선행을 무시하는 시대입니다.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쓰임받고 많은 열매를 맺는 교회가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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