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서 11장: 평화의 비전

해설:

심판은 하나님의 마지막 행동이 아닙니다.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구원에 있습니다. 그분이 심판하신다면 그것도 구원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며 또한 과정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심판의 예언과 함께 구원에 대한 희망을 제시하십니다. “이새”(1절)는 다윗의 아버지 이름입니다. “이새의 줄기”라는 번역은 오역에 가깝습니다. “이새의 밑둥”이라고 번역해야 옳습니다. 다윗 왕조를 나무에 비유하자면 몸통이 잘려나가고 밑둥만 남은 상태라는 뜻입니다.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다윗 혈통으로부터 새로운 지도자가 나타날 것이며, 그에게는 주님의 영이 내려(2절)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으며(3절) 정의와 공의를 따라 다스릴 것입니다(5절). 그 지도자는, 위로는 하나님을 진실되게 섬기고(3절) 아래로는 “가난한 사람들”과 “억눌린 사람들”을 돌보고 “잔인한 자”와 “사악한 자”를 징계합니다(4절). 그의 정의로운 통치는 하나님께 대한 경외감에서 나온다는 뜻입니다. 

그 지도자가 다스리게 되면 이 땅에서 모든 분쟁과 전쟁이 그칠 것입니다. 그 평화의 비전을 동물의 세계에 비유하여 설명합니다(6-8절). 이리, 표범, 새끼 사자, 곰, 사자, 독사 그리고 살무사는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으로 약자들 위에 군림하고 유린하고 살륙하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인간의 본성이 죄로 물들어 있기에 약육강식의 원리가 인류 역사를 지배해 온 것입니다. 그 지도자가 정의와 공의로 다스리는 날이 오면 인간의 죄성이 치유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인류는 항구적인 평화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온 세상 만민이 그 지도자에게 몰려 올 것입니다(10절). “물이 바다를 채우듯, 주님을 아는 지식이 땅에 가득하기 때문”(9절)입니다. 

여기까지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감에 따라 먼 훗날 메시아를 통해 일어날 일을 바라봅니다. 이새의 밑둥에서 나올 새 싹은 다윗 왕가에서 나올 어떤 임금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메시아를 가리킵니다. 10절의 “그 날”은 메시아가 나타날 때를 가리킵니다. 

역사의 지평 너머를 바라보며 예언을 했던 이사야는 눈길을 내려 가까운 역사의 미래를 내다 봅니다. 11절의 “그 날”은 이스라엘과 유다 역사에 하나님께서 특별한 구원의 행동을 하실 날을 가리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앗시리아에 의해 멸망하여 제국의 여러 나라에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되었고, 남왕국 유다는 머지 않아 바빌론에 의해 점령 당하고 국민들은 포로로 잡혀갈 것입니다. 하지만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는 세계 여러 나라에 흩어져 있던 당신의 백성들을 다시 모을 것이고 이웃 나라들이 두려워할만큼 강한 나라게 되게 할 것입니다(11-16절).

묵상:

이사야를 통해 주신 메시아 시대의 평화의 비전을 읽으면서 우리는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본 환상을 기억합니다. 예수께서 재림하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는 모습을 보면서 사도 요한은 하늘 보좌로부터 큰 음성을 듣습니다. 

“보아라, 하나님의 집이 사람들 가운데 있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실 것이요,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나님이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니, 다시는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다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계 21:3-4). 

이사야를 통해 주신 평화의 비전이 완전히 이루어지는 것은 예수께서 재림하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할 때의 일입니다. 재림의 날에 완성될 그 영원하고 완전한 평화는 믿음을 통해 오늘 우리가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를 우리에게 주신다고 하셨습니다(요 14:27).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고 성령의 선물을 받으면 우리는 마지막 날에 임할 그 평화의 능력을 마음으로 경험할 수 있습니다. 또한 마음으로 평화의 능력을 경험한 사람들이 모여 한 몸을 이루면 그곳에 평화의 비전이 실현됩니다. 

그렇게 믿음 안에서 평화의 능력을 경험하면서 마지막에 완성될 평화의 비전을 바라봅니다. 그 평화의 비전은 ‘이미’ 우리에게 경험되고 있지만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습니다. 그 완성의 날을 기다리며 오늘 우리에게 있는 평화의 능력을 키우고 또한 그것을 전하며 사는 것, 그것이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4 thoughts on “이사야서 11장: 평화의 비전

  1.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우리에게 예시하시는 예수님의 출생과 재림을 마음 속에 담아 봅니다, 강육약식의 자연 법칙과 전쟁과 기근의 지난 날들을 상기하며 인류의 시작과 함께 근본적으로 죄에 물든 인류사를 되돌아 봅니다, 하지만 그 것이 다른 민족과 나라가 아니라 내 자신 속에 상존하는 같은 갈등을 인지하며 오직 주님만이 평화를 선포하며 평화의 비젼을 주시기에 다시한번 주님을 경배하며 찬양합니다.
    평화와 평등으로 오시는 주님, 이번 성탄 절기에도 온 세상에 비둘기 같이 임하시어 평화의 성탄절로 가득 채우기를 간구합니다.
    마타나라 어서 오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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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남과 북이 갈라진 조국을 생각하는 말씀입니다. 대량 학살 하는 폭탄과
    미사일로 협박받는 남한과 굶주림과 핍박으로 고생하는 북한, 주위의
    강국의 뜻을 따라야하는 처지를 불쌍히 여기시고 하루 속히 오시기를
    기도합니다. 이웃과 더불어 평화의 소망으로 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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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약육강식의 우리의 본성은 어디서나 볼 수 있습니다. 정도의 차이이지만 강자가 약자를 억압하고 약탈하는 정글의 법칙은 옛이나 지금이나 선진국이나 후진국이나 가정이나 사회에서나 볼 수 있습니다. 죄에 사로잡혀 우리가 파멸하기 마련인데. 하나님은 예수님을 보내셔서 우리를 구원해주셨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이 진리라는 걸 깨닳게한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십자가로 말미암아 제 마음에 평화를 주시고 평화의 능력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 평화의 능력을 상처받고 소외받는 이웃들에게 전하기를 원합니다. 내려놓아야 하는 걸 내려놓게 하시고, 용기가 필요할 때 용기 더하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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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바른 것, 좋은 것에 대해 확신이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분별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가치와 소용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는 때가 있습니다. 어느새 냉소적이 되어 버렸습니다. “정의와 성실을 허리띠처럼” 두른 메시야를 묵상하는 것은 그를 기다리는 나도 그분의 모습을 본받아 나 또한 정의와 성실을 행하며 살기 위해서 입니다. 어느새 굳어진 마음, 굴절된 시각을 바꾸기를 원합니다. 정의와 성실이 보이지 않는다고 나마저도 정의와 성실을 팽개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막연하게 바라기만 하면 이상주의자일 뿐이지만 희망하는 것을 믿음으로 구하며 내 몫의 일을 감당하면 하나님의 시간에 그 일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신념과 행동의 균형이 필요한 까닭입니다. 신념이 행동으로 이어지기까지 통과하는 문이 기다림의 문입니다. 기다리는 동안 내 마음은 평화만 경험하지 않습니다. 믿는대로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기에 오는 기쁨 만으로 채워지지도 않습니다. 어린아이들이 산타가 선물을 줄 거라고 확신하며 날짜가 지나기를 손가락 꼽아 기다리는 기다림과 같지 않습니다. 믿으면서도 여전히 자신 없고, 소용이 있나 없나 묻고 또 묻고, 믿음과 회의 사이를 여러번 오고 가며 여러번 속을 끓입니다. 말 그대로 속에 불이 나서 끓어오르는 것입니다. 끓이다 끓이다 멈추는 때가 옵니다. 은혜가 임하는 것을 경험하면 속 끓임이 멈추고 조용해집니다. 가라앉습니다. 좋은 것, 남겨야 할 것은 밑으로 가라앉고 불순물이 위로 떠오릅니다. 나의 기다림은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맞기까지 나름 치열하고 어지럽고 괴로운 싸움을 하는 시간입니다. 정의와 성실을 우습게 알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아기” 예수를 우습게 아는 냉소와 교만을 버리게 하소서. 아기 예수의 조용하고 부드러운 힘을 의지하게 하소서. 아기를 키워본 엄마들은 다 압니다. 아기를 돌보고 키우는 사이에 아기 또한 엄마를 키우고 돌봤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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