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장 1-25절: 깨어진 하나님의 침묵

해설:

누가는 “우리 가운데서 일어난 일들”(1절)에 대해 씁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하신 일을 가리킵니다. 누가가 이 글을 쓰기 전에도 같은 시도를 한 사람이 “많이”(1절) 있었습니다. 하지만 누가는 이 일들의 “모든 것을 시초부터 정확하게 조사하여 보았으므로”(3절) 다시 쓰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데오빌로”(3절)는 누가의 이 프로젝트를 재정적으로 후원했던 독지가였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그는 이 일들에 대해 이미 배워 알고 있지만(4절) 누가는 그 모든 것이 “확실한 사실임을” 알게 되기를 바라는 소망으로 이 글을 씁니다. 독자인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일어난 일들에 대해 이미 배워 알고 있지만, 누가의 이 글을 읽고 묵상하면서 그것이 확실한 사실임을 알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누가는 사가랴와 엘리사벳 부부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사가라는 제사장이었고 그 아내도 역시 제사장 가문의 딸이었습니다(5절). 두 사람은 경건하고 의로운 사람들로서 율법을 “흠 잡을 데 없이 잘 지켰”(6절)는데, 불행하게도 늙도록 자녀가 없었습니다(7절). 

당시 제사장들은 24조로 나누어 일 년에 두 주간씩 성전 제사일을 섬겨야 했습니다. 사가랴가 속한 조가 성전 일을 섬길 때의 일입니다. 제사장들이 가장 영예롭게 생각하는 일은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는 일(9절)이었는데, 사가랴에게 그 일이 떨어집니다. 

사가랴가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는 동안에 백성들은 바깥에서 기도하고 있었는데, 성소에서 주님의 천사가 그에게 나타납니다(11절). 천사는 그에게 아들을 낳게 될 것이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고 하라 하십니다(13절). 그 아들은 태중에서부터 성령으로 충만할 것이고,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서 많은 사람들을 그들의 주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할 것”(16절)이라고 말쌈하십니다. 또한 그 아들은 “엘리야를 심령과 능력을 가지고 주님보다 앞서 와서”(17절) “주님을 맞이할 준비가 된 백성을 마련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말라기서 4장 5-6절의 예언이 세례 요한에게서 성취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사가랴는 자신과 아내가 모두 늙었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18절). 엘리사벳은 생리적으로 임신하지 못하는 사람이었고, 노인이 된 지금은 더욱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 그러자 천사는 자신의 이름이 가브리엘이라고 알려 주면서 자신이 말한 것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말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19-20절). 바깥에 있던 사람들은 분향하는 시간이 길어지자 모두들 이상하게 여깁니다. 성소는 하나님의 임재가 약속된 곳이므로 심상치 않은 일이 있으리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분향하고 나온 사가랴가 말을 못하는 겁니다.  

성전에서의 봉사 기간을 마치고 자기 집으로 돌아간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얼마 뒤에 임신이 된 것을 알게 되었고 다섯 달 동안 숨어 삽니다(24절). 노인의 몸으로 임신한 것이 흉으로 보일 수 있었기 때문이고, 또한 하나님께서 하신 신비한 일을 보호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엘리사벳은 평생토록 구하던 일이 이루어진 것으로 인해 감사 드립니다(25절).

묵상:

예언자 말라기 이후로 예언의 끊겼다는 것이 유대 랍비들의 일반적인 믿음이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하나님은 ‘밧콜'(bat kol)을 통해서 당신의 백성과 소통하셨습니다. ‘밧콜’은 단편적으로 주어지는 하늘의 소리를 가리킵니다. 예언자들에게 주어진 계시는 장대비처럼 쏟아진 것이라면, ‘밧콜’은 소낙비처럼 간헐적으로 그리고 단편적으로 주어졌습니다. 많은 유대교인들은 지금도 하나님은 ‘밧콜’을 통해 말씀하신다고 믿습니다만, 4백여 년 동안의 침묵이 세례 요한을 통해 깨어졌다는 것이 기독교의 믿음입니다. 세례 요한은 말라기 이후로 이어진 오랜 기간의 공백을 깬 예언자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늘 그렇듯이 가장 그럴 듯하지 않은 사람을 통해 당신의 일을 시작하십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유대 산골에 살던 가난한 제사장 노인 부부를 택하십니다. 그들은 비천하고 가난했지만 “주님의 모든 계명과 규율을 흠잡을 데 없이 잘 지켰던”(6절) 사람들입니다. 사라의 죽은 태를 열어 선민의 역사를 시작하셨던 하나님은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죽은 몸을 통해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십니다. 그 사실 앞에서 우리는 사가랴처럼 입 다물고 두렵고 떨림으로 고개를 숙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이 신비로운 역사는 지금도 우리 중에 계속되고 있습니다.  

4 thoughts on “누가복음 1장 1-25절: 깨어진 하나님의 침묵

  1. 사가랴와 엘리사벳을 통해 이루어 낸 주님의 신비한 역사를 묵상합니다, 처음 아브라함을 불러 적자를 주시겠다는 말씀으로 시작 된 신비의 역사가 반복되는 기적을 보며 주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하셨음을 상기합니다, 그 세례 요한을 통해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시키시며 이 기쁜 소식이 온 천하에 울려퍼지는 메시아의 탄생을 통해 세로운 주님의 역사가 쓰여지는 세상을 맞았습니다.
    주님의 탄생을 기념하며 준비하는 한 주일이 되기를 조용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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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주님께서 분부하신 모든것을 흠없이 지키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확실한 사실, 오셔서 함께하시고, 오실 주님을 이웃과 함께 세상에 알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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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가브리엘 천사가 사가랴에게 찾아와 아들이 태어날 것을 알려주는 이 장면은 두려움과 기쁨이 얼기설기 얽힌 사가랴의 심정을 상상하게 만듭니다. 사가랴가 천사의 말을 믿지 않아 열달 동안 말을 못하게 되었지만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명령과 예언이 중단된 지 몇 백년이 지난 이 때 자기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셨다고 말하고 다니면 믿을 사람보다는 안 믿을 사람들이 더 많을 것입니다.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 앞에 더더욱 정결하고 의롭게 살고 싶은데 말을 못하게 된 것은 경건한 삶에 도움이 되는 상황입니다. 엘리사벳이 다섯달동안 두문불출을 한 것도 같은 뜻일겁니다. 제사장 만이 들어갈 수 있는 지성소에서 천사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과 엘리사벳이 집 안에만 머무르며 임신초기를 지내는 장면을 같은 화폭에 그려진 한 그림처럼 상상하며 읽습니다. 여자가 임신하면 안 보이다 언제서부턴가 밖으로 표시가 나는 것처럼, 숨겨진 (hidden) 일이 드러나는(shown) 시점이 옵니다. 대체로 사람은 나쁜 일을 숨겼다 나중에 드러나 챙피를 당하게 되고, 하나님의 일은 숨겨진 보화를 찾는 기쁨, 침묵에서 깨달음의 응답으로 우리에게 오는 것이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주님보다 먼저 태어나 요한은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하게 한다 (17절)는 말씀을 함으로 가브리엘은 곧 있을 예수님의 탄생도 알려줍니다. 침묵 속에서 하나님과 깊은 대화를 나누는 사가랴, 태어날 아들에게 어떤 엄마가 될 것인지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엘리사벳을 상상하며 나도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이 절기를 지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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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간혈적으로 내리는 축복을 감사하게 받아들이려면 경건한 삶을 살아야지 가능합니다. 어려운 삶을 원망과 치열속에서 살다보면 좋은일이 일어나면 내 욕망에 사로잡혀 더 마음이 굳기 쉽상이죠.

    저도 평소에 하나님과 자주 진솔하게 사귀기를 원합니다. 축복 주심에 감사하고. 선한 길로 인도하시리라는 믿음 안 흔들리도록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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