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장 67-80절: 평화의 길

해설:

10개월 만에 입이 열린 사가랴는 성령으로 충만해져서 노래하며 예언을 합니다(68-79절). 먼저 그는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주신 구원의 약속을 잊지 않으시고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셨다는 사실로 인해 찬양을 드립니다(68-75절). 하나님은 오래 전부터 예언자들을 통하여 메시아를 보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70절). 유다 백성은 그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학수고대 했지만 수백 년이 지나도 그 약속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사가랴는 자신의 아들을 통해 그 “거룩한 언약”(72절)이 이루어지기 시작하고 있음을 알고 무한한 영광을 느꼈을 것입니다. 이제 메시아가 임하시면 그는 “우리를 원수들의 손에서 건져주셔서 두려움 없이 주님을 섬기게 하시고, 우리가 평생 동안 주님 앞에서 거룩하고 의롭게 살아가게”(74-75절) 하실 것입니다. 

그런 다음 사가랴는 요한이 장차 하게 될 일을 예언합니다(76-79절). 그는 메시아보다 앞서 나타나(76절) “죄 사함을 받아서 구원을 얻는 지식을 그의 백성에게 가르쳐”(77절) 그 길을 준비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자비로운 심정”(78절)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메시아를 통해 “해를 높이 뜨게 하셔서, 어둠 속과 죽음의 그늘 아래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게”(78-79절) 하셔서 “평화의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 이후로 요한이 어떻게 자랐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나는 날까지 광야에서 살았다”(80절)는 기록에서 요한이 광야의 어느 공동체에서 자랐을 것이라고 추측할 뿐입니다. 당시 유대 광야에는 쿰란 공동체와 같은 수도 공동체가 많이 있었습니다. 요한이 태어날 때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노인이었음을 감안하면, 요한이 어릴 때 그들이 세상을 떠났고, 요한은 광야의 수도자들에게 맡겼을 가능성이 큽니다. 30년 후에 대중에게 나타났을 때 그는 유대 광야에서 세례자가 되었습니다.

묵상:

예수님이 태어나실 당시에 로마는 ‘로마의 평화'(Pax Romana)를 선전하고 있었습니다. 로마 제국의 깃발 아래에 들어와야만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명분 아래 닥치는 대로 제국을 확장해 갔습니다. 겉으로는 맞는 이야기처럼 들렸습니다. 당시에 로마 제국을 상대로 싸우려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로마의 속국이 되면 다른 나라로부터의 침략으로부터 보호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외면적인 평화일 뿐입니다. 로마 제국의 식민으로 산다는 것은 유린과 착취와 억압을 일상으로 겪는다는 뜻이었습니다. 로마 제국은 그 모든 야만 행위를 평화를 위한 댓가로 정당화시켰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가랴는 메시아가 오시면 우리를 “평화의 길로 인도하실 것”(79절)이라고 예언합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셨을 때 목자들에게 나타난 천사들은 “더 없이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주님께서 좋아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로다”(2:14)라고 노래함으로써 사가랴의 예언이 이루어졌음을 확인시켜 줍니다. 이것은 로마 제국의 정치 선전에 대한 아주 은밀한 도전입니다. 그것은 “로마 제국이 준다는 평화는 거짓이다. 이제 메시아가 오시면 로마 제국이 주지 못하는 참된 평화를 주실 것이다”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로마는 ‘전쟁으로부터의 안전’을 평화라고 불렀지만,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통해 주시는 평화는 인간이 맺고 있는 모든 관계(하나님과의 관계, 자신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다른 생명과의 관계)가 온전해지는 것입니다. 그 길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활짝 열렸습니다. 믿음은 그 길을 걸어 평화를 누리고 또한 평화를 전하는 삶입니다.  

 

2 thoughts on “누가복음 1장 67-80절: 평화의 길

  1. 사가랴는 아들 요한이 장차 할 일을 예언합니다. 비록 자신은 그 일을 볼 수 없지만 자기 가문을 통해 세상에 태어난 요한이 앞으로 감당할 사명을 선언합니다. 늘그막에 얻은 자식을 무릎에 앉히고 재롱을 보는 소소한 재미를 언제까지 보았는지 모르지만 제사장의 의복을 걸치는 어깨는 무겁고 쓸쓸하구나 싶습니다. 자기 아들이지만 언약의 성취를 준비하기 위해 하나님의 전령으로 온 아기 요한을 보는 사가랴의 심정이 느껴집니다. 가장 높으신 분의 예언자,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자, 구원의 지식을 주는 자. 구약에 그려진 광야의 이미지가 복음서에서는 사뭇 달라집니다. 요한이 광야에서 살았다는 오늘 본문을 시작으로 광야는 준비하고 연단하는 곳이라는 점에서는 구약시대와 같지만 스스로 선택하여 광야로 간 것 같은 인상을 얻습니다. 예수님도 광야로 나가 금식하며 사탄과 맞섰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아 광야에서 지내는 동안 요한도 예수님도 하나님과 깊은 사귐을 가졌을 것입니다. 광야에서 하루라도 제대로 지낸 적은 없지만 낮과 밤의 얼굴이 전혀 다르다고 들었습니다. 밤하늘의 별도 셀 수 없이 많고 우주에 나 혼자만 있는 것 같은 광대함이 느껴진다고 어디선가 읽기도 했습니다. 이런 광야에서 요한이 자라고, 예수님이 수련했습니다. 세상으로 돌아오기 위해 광야에서 단련을 했다는 점이 초점에 들어옵니다. 세상에 나가기 전에 광야에서 배운다…세상을 이기려면 먼저 한 사람, 자기를 이겨야 한다…세상을 변화 시키려면 광야를 알아야 한다…사가랴의 무거운 어깨가 요한에게로 이어지고, 예수님에게로 옮겨집니다. 우리의 제사장 예수님. 단 한 번의 제사로 모든 제사를 폐하신 분. 온 세상을 어깨에 메신 분.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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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Pax Americana, Pax Russia 요새는 Pax China 로 군사력과 경제로
    평화를 추구할려하지만 반대로 전쟁 위협만 계속 되고 있는 상태입니다.
    평화의 왕 주님을 간절히 기다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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