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장 13-23절: 하나님의 방법

해설: 

새로운 왕의 탄생으로 인해 자신의 삶의 터전이 흔들리는 것을 감지한 헤롯 대왕은 그 왕을 제거함으로써 안정을 꾀하려 했습니다. 그는 동방 박사들이 자신에게 보고하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을 알고는 군대를 시켜 베들레헴 지경에 있는 두 살 이하의 남자 아이를 살해 하라고 명령합니다(16절). 당시 베들레헴 인구를 감안해 보면 그리 많은 수는 아니었을 것입니다만, 한 순간에 아들을 잃은 부모들의 통곡 소리가 그 마을을 흔들었을 것입니다. 

여기서 마태는 예언자 예레미야의 예언을 기억해 냅니다. 바빌론이 남왕국 유다를 멸망시킨 후 유대인들을 포로로 잡아가기 위해 라마에 집결 시킵니다. 라마에서 바빌론으로 가는 길에 베들레헴을 지나가야 했는데, 그곳에는 야곱의 아내 라헬의 무덤이 있었습니다(창 35:19-20).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나 주가 말한다. 라마에서 슬픈 소리가 들린다. 라헬이 자식을 잃고 울고 있다. 자식들이 없어졌으니, 위로를 받기조차 거절하는구나”(렘 31:15)라고 말씀하십니다. 무덤에 누워 있는 라헬이 자신의 후손들이 노예로 끌려가는 것을 보며 슬피 울고 있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마태는 헤롯 대왕의 영아 살해로 인해 무덤에 누워 있는 라헬이 또 다시 통곡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헤롯 대왕이 파견한 군인들이 베들레헴에 당도하기 전에 하나님은 요셉에게 그 사실을 미리 알려 주어 이집트로 피신하게 하십니다(13-14절). 그곳에 얼마간 머무르다가 헤롯 대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요셉은 가족을 데리고 돌아 옵니다(19-21절). 여기서 마태는 호세아 11장 1절의 말씀을 기억합니다(15절). 기근을 피하여 이집트에서 살던 이스라엘 백성을 때가 되었을 때 다시 불러내신 것처럼, 하나님은 헤롯 대왕의 마수를 피하여 이집트에서 살던 예수님을 때가 되어 다시 불러 내신 것입니다. 

헤롯 대왕이 죽자 로마 정부는 팔레스타인 땅을 나누어 헤롯 대왕의 자녀들이 분할 통치 하게 했습니다. 그들 중에서 유다 땅을 분할 받은 헤롯 아켈라오의 악명이 제일 높았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갈릴리 지방으로 가서 나사렛이라는 동네에 정착했습니다(22절). 이 모든 일은 우연과 사건의 연속으로 이루어진 것 같지만, 실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섭리하신 일입니다. 

묵상: 

인간의 욕망이 하나님의 섭리를 거스를 때면 비극이 발생합니다. 거스르는 사람에게 힘이 있으면 그 비극은 그만큼 커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 강해지는 것은 본인에게나 다른 사람에게 큰 재앙을 키우는 일이 됩니다. 헤롯 대왕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권력의 맹목성과 폭력성을 상징합니다. 헤롯은 우리 모두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불순한 욕망을 폭로합니다. 

인간의 무지와 거부와 역행과 악행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인간의 악행은 너무도 압도적인데, 하나님의 일은 너무도 미미해 보입니다. 보이는 것은 모두 악행 뿐이고 들리는 것은 모두 신음 뿐인 것 같습니다. 인간의 악행은 즉시로 피를 불러 오지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너무도 느려 보입니다. 하지만 결국 드러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요, 결국 이기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믿음이란 보이지 않게, 은밀하게, 느리게 움직이는 하나님의 손길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요셉처럼 무력해 보입니다. 권력자의 폭행에 속수무책인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통해 결국 일을 이루십니다. 

3 thoughts on “마태복음 2장 13-23절: 하나님의 방법

  1. 오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관자 이심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헤롯은 당대에 왕으로 군림했고 그의 세상적인 성공이 스스로의 자랑이었고 부러움의 대상이었을지라도 하나님의 역사에는 잔인하고 악한 자로 기록되었습니다.

    동방에 있었던 박사들은 값진 보물을 가지고 별을 따라 나섰을 때 메시야를 만났을뿐 아니라 성경에 기록되는 축복의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역사하시는 역사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으로 부터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의 비밀이셨던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고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의 복음이 전파되어 영원한 천국에서 하나님과 함께 기쁨으로 사는 그 날까지 우주를 통해 이루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는 계속 될 것입니다. 그 역사의 한 순간을 지나며 어디서 왔으며 무엇 때문에 살고 어디로 가는지에는 관심도 없이 먹고 사는 것에 분주하여 세속적인 사람으로 삶을 마감한다면 하나님의 역사에는 아무 것도 기록되지 못한 잊혀진 사람밖에 되지 않을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역사속에 하나님께서 기억하실 수 있는 한 사람으로 남겨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오늘 말씀에는 순종의 사람이라고 하신 것 같습니다.

    요셉은 가난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동방 박사가 예물로 가져온 황금과 유향과 몰약은 그의 삶의 터전을 마련 할 수 있었던 재산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귀한 것이라고 일평생 보관만 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헤롯이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라 한 것을 볼 때에 그동안 그가 평소에 계획하던 목공소도 차리고 편안하게 살만한 때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꿈에 나타난 천사의 말을 듣지 않고 현재의 삶에 안주 할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요셉의 순종을 보며 믿음의 사람은 새로운 삶에 도전할 줄 아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요셉은 떠나라고 하신 말씀에 이유를 묻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떠나라 하셨을 때 모든 것을 정리하고 한번도 가본 적이 없었던 미지의 나라로 가족을 데리고 떠났다는 것입니다.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요셉이 꾸었던 꿈보다 더 정확하고 명쾌하게 기록된 말씀을 늘 읽고 듣고 살아갑니다. 왜 순종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지금의 삶에 익숙하기 때문인가요. 그렇지만 성경에 기록된 시대를 이끌었던 믿음의 사람들은 안주하는 자들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믿음을 따라 현실에 도전하던 자들이었습니다. 세속적인 삶에서 영적인 삶에 도전하고 이기적인 삶에서 나누는 삶에 도전하고 육을 따르는 삶에서 영을 따르는 삶에 도전했던 자들이었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지금 편하다는 핑계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알면서 지키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역사에 기억되지 못하는 잊혀진 인생이 될 것 같습니다. 요셉의 순종을 보며 현실에 안주하는 자가 아닌 말씀을 붙잡고 세상에 도전하고 내일에 도전하는 믿음의 사람이 될 것을 다짐하며 주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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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매일 말씀으로 깨우쳐 어렵고 힘들더라도 실천하는 결단을 원합니다.
    Comfort zone 에서 벗어나 challenge 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웃과 더불어 오늘의 삶이 주님의 계획과 뜻에 따라 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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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헤롯은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다 하고 살았습니다. 동방박사를 통해 왕이 될 아기가 태어난 곳을 알아내지 못했으니 당연히 화가 났겠지요. 그렇다고 분풀이를 이렇게 하다니…이런 악행을 저지르고 오래 지나지 않아 헤롯은 죽었습니다. 요셉이 꿈에 헤롯이 죽었다는 계시를 받고 갈릴리의 나사렛으로 갑니다. 갈릴리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오겠냐며 사람들이 비웃던 갈릴리는 이렇게 예수님의 고향이 됩니다. 어디로 가 정착한들 좋은 땅이요 선한 것이 나는 옥토일까요, 구석구석 어디나 다 죄 많은 사람들이 모여사는 에덴의 동쪽인데… 헤롯이 죽인 아기들의 피로 물든 땅. 자식을 잃은 엄마들의 비명으로 가득찬 땅…헤롯이 죽은 후에 왕이 된 아들 아켈라오는 아버지 못지않게 잔인했나 봅니다. 역대하에 기록된 왕들의 성과와 악행이 떠오릅니다. 제국의 왕들이 제멋대로 왕 노릇하는 한 평화란 없습니다. 왕들이 자비와 공의를 저버리면 백성들도 자비와 공의를 떠나게 되어 있습니다. 폭력의 세상에 솜사탕 같은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사자 우리에 어린 양이 태어났습니다. 성탄의 계절은 게임이 안되는 상황, 등 뒤로는 낭떠러지가 있는 상황에서 구원의 계시를 주시는 하나님과 만나는 계절입니다. 사가랴와 마리아, 요셉, 목자들, 동방박사들에게 꿈으로, 밤 하늘 별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여러번 만나는 계절입니다. 나에게 어떤 계시를 주시는지 귀를 기울입니다. 두려움을 몰아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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