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장 1-17절: 때가 찼을 때

해설: 

저자들은 대개 책을 쓰려 할 때 어떤 이야기로 시작하느냐의 문제를 두고 숙고에 숙고를 거듭합니다. 첫 이야기가 그 책의 방향을 정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첫 이야기를 통해 독자의 마음을 사로 잡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마태는 족보를 첫 이야기로 선택합니다. 오늘의 독자들에게 이것은 아주 매력 없는 이야기입니다. 처음 성경을 접한 사람들에게 족보는 마태복음뿐 아니라 신약성경 전체에 대한 흥미를 잃게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태가 이 복음서를 쓸 때 염두에 두었던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가장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족보는 역사를 간략하게 요약하는 도구입니다. 족보에 나온 이름은 각각 역사와 이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다 전할 수 없기에 이름만을 전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 족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 이루어 오신 구원의 역사를 요약해 줍니다. 우리에게는 생소한 이름이 많지만, 마태복음의 쓰여질 당시의 유대인이 이 족보를 읽었다면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생각하며 읽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족보를 한숨에 읽어 내려가지만, 당시 유대인들은 이름 하나 하나에서 멈추어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아브라함, 이삭, 야곱, 다윗, 솔로몬 등과 같은 낯익은 이름 앞에서는 잠시 멈추어 그들의 이야기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게 장구한 세월 동안 이어져 온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연속선상에서 그리고 그 절정에서 예수님은 태어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 안에서 준비되었던 일입니다. 17절에서 “14대를 세 번 반복한 후에 예수께서 태어나셨다”고 강조하는데, 14는 완전수 7의 곱이며, 3은 또 다른 완전수입니다. 즉 예수님의 탄생은 오랜 동안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사건이라는 뜻입니다. 또한 아브라함을 선택하여 시작한 이스라엘의 시간이 다 찼을 때 예수님이 메시아로 오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선민 이스라엘을 통해 펼쳐 오신 구원의 역사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하려 하시는 것입니다.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문화에서는 족보에 남성 이름만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족보에는 네 명의 여성(3절 다말, 5절 라합과 룻, 6절 우리야의 아내)이 나옵니다. 다말에 대해서는 창세기 38장, 라합에 대해서는 여호수아기 2장, 룻에 대해서는 룻기, 그리고 우리야의 아내에 대해서는 사무엘기하 11-12장에 기록이 나와 있습니다. 네 여성의 공통점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여성이라는 점, 둘째, 이방인이라는 점, 셋째,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라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는 유대인, 남성 그리고 거룩한 사람들만이 아니라 이방인, 여성 그리고 깨어진 사람들까지도 참여해 왔다는 뜻입니다. 그 역사는 비천한 마리아와 가난한 요셉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이 태어나신으로 것으로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묵상: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역사의 과정에서 우연히 혹은 갑자기 돌출된 사건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불러내어 시작하고 이끌어 오신 선민의 역사의 끝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셨을 때 이스라엘의 역사는 절정이 아니라 가장 깊은 절망에 빠져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 이스라엘은 끝났고 이스라엘을 통해 하시려던 하나님의 구원 역사도 실패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생각과 계획은 달랐습니다.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어둠이 가장 짙었던 시간에 빛을 비추어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침묵하신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하나님은 때가 찰 때까지 기다리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민으로 세우신 것은 모든 민족을 구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처음부터 하나님의 마음에는 당신의 모든 피조물을 구원 하시려는 계획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을 선택하여 “내가 거룩한 것처럼 너희도 거룩하라”(레 11:45)고 하신 이유는 모든 인류를 거룩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이스라엘의 메시아는 곧 모든 인류의 구원자이기도 하십니다. 족보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다만 이스라엘 백성의 후손이 아닙니다. 그분의 가계에는 이방인도 있었고, 성적으로 수치스러운 과거를 가진 사람도 있었고, 흉악한 죄인들도 있었습니다. 

그분은 이 모든 사람들의 구원자로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에 그분은 나에게도 구원자가 되십니다. 

3 thoughts on “마태복음 1장 1-17절: 때가 찼을 때

  1. 태초부터 저희들을 아브라함의 자녀로 작정하신 주님의 사랑에 감사를
    드립니다. 십자가를 거쳐서 주님의 자녀로 입양시켜주신 주님의 계획에
    영광을 드립니다. 허락하신 육신의 자녀들도 주님의 뜻, 영혼구원 계획에
    포함되는 새해가 되기를 원합니다. 이웃과 함께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부활의 증인으로 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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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예수님의 족보를 읽고나니 제 부모님세대와 그 전세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됩니다. 아주 오래전에 신분제도가 폐지되었어도 가문의 어르신들이 나누는 대화에 어느집이 양반집 가문이다 하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조상신을 잘 모시고 바람직하게 살아야 그 후손이 대대로 번성하기 때문에 제사도 정성을 받쳐서 드리고 풍수지리에 맞추어 묘지도 정했습니다. 아무래도 옛날에는 가족의 유대관계를 통해 먹고 살았기에 더욱 ‘바람직한 족보’를 챙겼는지 아닌가 생각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양반집이냐 아니냐 얘기는 안하지만 금수저부터 흙수저까지 기준을 정해 신분을 나눕니다. 몇십세대를 걸쳐 쌓은 가문의 명망보다 바로 앞세대가 쌓은 제산이 더 중요하죠. 흙수저로 시작하면 아무리 노력해도 먹고 살기 힘들지만 금수저는 가만히 앉아있어도 소유한 재산이 새로운 부를 만들기 때문이죠. 심각해지는 재산 불평등과 부의 세습화가 더 많은 사람들을 투기로 부추깁니다.

    하나님이 생각하신 때와 제가 생각하는 때가 다르구나 알게됩니다. 저는 지금부터 죽을 때까지 동안 어떻게 하면 더 순탄하게 살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족보에는 다양한 삶이 있었습니다. 목수, 지주, 과부, 상인, 총리, 왕, 등등. 성경에 적혀있는 그들의 삶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더 알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실 메시아가 결코 부유하고 고귀한 가문에서 태어나신게 아니라는 것도 배우게 됩니다.

    오늘 하루를 보내며 제가 하나님의 사랑받는 아들이라는 걸 몇번 더 기억하기를 원합니다. 제 마음이 재산과 지위에 매어있지 않게 되기를 원하고 사람들에게 인정 받는것에 급급해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그저 예수님이 주신 계명을 쫓겠습니다.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제 이웃을 제몸과 같이 사랑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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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하늘에서 뚝 떨어진 예수님이 아니라서 더욱 믿을만합니다. “너희는 인간이라 그것 밖에 못하지만 나는 신이라 이만큼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예수님이 아니라 더욱 사랑할만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알 수 없지만 그분의 약속은 믿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때는 알 수 없지만 그분의 현존은 느낄 수 있습니다. 일년을 돌이켜보니 다시 돌아가 고치고 싶은 순간이 몇 군데 있습니다. 교회 속회에서 망년모임을 가졌는데 “특별히 감사했던 일”을 나누자는데 잠시 당황이 되었으니 감사를 잊고 살았던 일년이었나 죄책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절대 아니지요. 감사할 것이 없다는 것은 사고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생각 없이 사는 사람이 아닌한 우리는 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올해 어느 한 시점에서 한 일이 내게 아픔으로 남습니다. 그렇게 하는게 아니었다는 생각만 듭니다. 하나님의 때를 몰라서, 그분의 뜻을 다 알지 못해서 그때 그렇게 했었는가 봅니다. 지금도 여전히 모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라가고 싶습니다. 다 알면 굳이 누구를 따라갈 필요가 없겠지요. 나처럼 의심도 많고, 두려움도 많고, 외로움도 자주 느끼는 사람은 예수님을 따라갈 수 밖에 없습니다. 올해는 이 모양 밖에 안 되었으니 내년에는 좀 나아져야겠다고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주님이 내게는 특별히 감사했던 분이요, 지금 이 자리가 특별히 감사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결정을 사랑하신다던 어느 신부님의 말씀에서 위안을 얻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족보를 사랑하십니다. 만인의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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